“국민 여러분, 여기는 국민안전청 민방위 경보통제소입니다. 실제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우리나라 전역에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이른 새벽 도심에 느닷없는 공습경보가 발령된다. 사이렌 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지고, 휴대전화에는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위급재난문자가 뜬다.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모든 시민과 정부기관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경찰청 경호과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국가 ‘요인(要人)’들에게 달려간다. 정부 주요 인사와 전쟁을 진두지휘할 국방부 인사, 무기 개발이 가능한 과학자 등 국가 존망을 손에 쥔 핵심 인력들이 적의 암살·납치·테러 공격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다.

14일 경찰청 훈령인 ‘요인 보호 규칙’에 따르면, 경찰은 적의 침투·도발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통합방위사태’가 선포될 경우 국가 핵심 인력인 요인들에 대한 보호 활동에 나서야 한다. 통합방위사태는 준전시 또는 전시 상황을 의미한다.

◇ 전쟁 승리로 이끌 한국의 ‘요인’들…미사일·인공위성 등 전문가 대다수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경찰 요인 보호 대상자는 현직 장관 등 정부 인사를 비롯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국방부 주요 인사, 한국과학기술원장을 포함한 과학자, 서울시장, 여당 대표, 야당 1당 대표 등 수십 명에 이른다. 특히 미사일과 인공위성 등 전쟁과 직결된 분야의 핵심 전문가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가장 최근에는 신약 치료제 개발로 업적을 인정받은 한국과학기술원의 김모 책임연구원이 요인 보호 대상자로 새롭게 선정됐다.

그래픽=정서희

이들은 국가비상사태 발생 시 상황에 따라 대통령과 함께 먼저 대피하는 핵심 인력이다. 경찰은 평시에는 요인들의 실거주지 파악 정도만 하다 전시 상황이 되면 별도로 구성한 경호팀을 각 요인에게 파견, 이들이 적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키는 등 보호 활동을 한다. 평시라도 요인들에 대한 테러·납치 징후가 발견되면 ‘특별보호 활동’에 나선다.

여기서 요인들은 평시에도 24시간 경호를 받는 대통령과 가족 등 국가 핵심 인력과 구분된다. 국가 핵심 인력은 ‘갑·을·병 경호’를 받으며 대통령과 가족들은 최고 단계인 ‘갑호 경호’를, 국무총리를 포함한 5부 요인들은 한 단계 아래인 ‘을호 경호’를 받는다. 마지막 단계인 ‘병호 경호’를 받는 인물은 현재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유일하다.

앞서 2004년 세계 최초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 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던 황우석 박사와 이병천·강성근·안규리 당시 서울대 교수가 이듬해 요인 보호 대상자에 이름을 올렸다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실제로는 반 전 총장과 같은 병호 경호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논문이 조작된 것으로 확인되자 당시 경찰은 경호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판단해 인력을 철수시켰다.

◇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지가 핵심…정치인·해외 대사는 제외

전시 상황에 대비한 통합방위 지침과 이에 따른 경찰의 요인 보호 규칙에 명시된 요인 선정 기준과 경호 방법 등은 모두 국가비밀에 해당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누가 요인 보호 대상자인지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한 만큼 대선·총선·지선 등 주요 선거 때마다 특정 정치인이 요인 보호 대상자로 지정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들린다.

경찰은 선거 기간 중 정치인 경호 활동을 하지만, 이는 괴한의 습격 등 범죄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어서 요인 보호와는 구별된다. 요인 보호는 전쟁 상황에서 필요한 핵심 인력을 보호하는 활동이어서 여당 대표와 야당 1당 대표 등을 제외한 정치인이 선정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전국 지자체장 중에서 요인 보호 대상자로 올라간 사람은 오세훈 서울시장밖에 없다.

현재 경찰 요인보호 대상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뉴스1

요인 보호 대상자는 각 정부 기관의 추천을 통해 정해진다. 정부 기관이 특정 인물을 요인 보호 대상자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하면, 경찰이 심의위원회를 열고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위원회는 해당 인물이 전시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만한 역량이 있는지를 판단한다.

이에 따라 국내에 있는 해외 대사들도 요인 보호 대상자로 등록되기는 쉽지 않다. 2015년 3월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 대사가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부상을 입었을 때도 그는 요인 보호 대상자가 아니었다. 경찰 경호 시스템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자 경찰은 뒤늦게 리퍼트 대사를 요인 보호 대상자로 지정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지만, 실제로는 경호 활동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도 해외 대사 중 요인 보호 대상자로 지정된 사람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급박한 전시 상황에서 해외 대사들까지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