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 모(30) 씨는 다음 달 만료되는 임대차 계약만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 잠을 이루지 못한다. 건물주가 한 달 120만원이던 월세를 16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상임법)에서 정한 상가 임대료 인상률은 5% 이내가 아니냐고 따져 묻자 건물주는 “그러면 월세는 유지하고 관리비를 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주장했다.

지난 3년간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병) 기간 건물주들이 자발적으로 동결했던 임대료를 최근 재계약이나 신규 계약 과정에서 인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상임법이 보장하는 법적 임대료 상한선을 무시하고 관리비를 신설하거나 인상하는 꼼수를 쓰는 경우도 있다. 암흑 같았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發) 불황에서 벗어나 이제 좀 숨통이 트이나 기대했던 자영업자들은 묶여있던 임대료 고삐가 다시 풀리려는 조짐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러스트=손민균

6일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일부 건물주들이 금리와 물가 상승에 따라 큰 폭의 임대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세입자들에게 조정을 통보하고 있다. 임대료 상한을 우회하려 관리비까지 신설하는 식이다. 상임법을 적용받지 않는 신규 계약의 경우 아예 인근 과거 시세보다 훨씬 높은 임대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경기도 안성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정인석(45) 씨는 이달 1일 월세를 납부하자마자 건물주로부터 “임대차 계약 만기인 내년 3월부터 임대료를 5% 인상하고 그 다음해에는 5% 올리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지난 3년 간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지 않아줘서 어렵게 장사를 이어갈 수 있었는데, 코로나 끝나자마자 10%를 올리겠다니 당황스럽다. 이래서 제때 월세를 내지 말라고 하는가 보다”라고 말했다.

반면 건물주들도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늘어난 데다 인건비 등이 오르면서 상가 관리에 드는 제반 비용이 모두 크게 올라 5% 인상도 모자란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4층 상가 소유주 박 모(65) 씨는 “은행 빚 없이 건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라면서 “팬데믹 기간에는 임차인들이 정말 힘들었지만 이젠 매출도 회복이 많이 됐으니 (월세 인상은) 당연한 수순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 불황과 고물가로 운영위기를 겪는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식재료와 인건비 등 모든 비용이 천정부지인데 고정비용인 임대료까지 올라서다. 또 상임법이 있어도 막상 건물주와 월세 인상률을 놓고 소송 등에 들어갈 경우 비용이 발생하고 다시 재계약을 맺기 힘들어져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울 강남에서 삼계탕집을 운영하는 최 모(60) 씨는 “음식 장사는 결국 단골 장사인데, 여기서 쌓아놓은 것을 모두 버리고 그냥 다른 데로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건물주가 올려달라는 것도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최대한 싸움 없이 타협하는 것이 최선이다. 마냥 법을 운운해봤자 건물주와 싸움이 나면 결국에는 임차인 손해가 더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로 인한 자영업자 부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1분기 자영업자 연체율이 1.00%를 기록하며 지난해 이후 가장 높았다. 또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잔액은 1033조7000억원으로 직전 분기 대출잔액(1019조8000억원)을 갈아치웠으며 차주 수도 313만3000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정부는 건물주의 관리비 인상 꼼수 등을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4월 대통령실은 상가 임대료 인상 제한(5%)을 회피하고자 건물주가 관리비를 과다하게 인상하는 행태를 차단하기 위해 상가 임대차계약에 관리비 산정 방식이나 기준을 명확히 담아 연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