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비만 월 200만원대 초반입니다. 독서실비, 교재비, 급식비는 따로 내셔야 하시는 건 아시죠? 학원 우선 선발은 마감됐어요.”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A학원. 대학교 여름 방학을 맞아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준비하겠다고 문의하자, 학원 상담 직원은 카운터에 앉아 고개를 들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정부가 지난 26일 수능에서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출제를 배제하고 공교육에 충실한 학생은 충분히 수능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사교육 경감 대책을 내놓았지만, ‘사교육 메카’인 대치동에선 아직 말발이 통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홍다영 기자

자신감은 과거 대입 실적에서 나왔다. A학원은 지난 입시에서 서울대 의대만 15명을 합격시킨 곳으로 유명하다. 대치동에서는 수험생이 의대에 진학하려면 반드시 다녀야 하는 ‘필수 관문’으로 꼽힌다. 킬러 문항에 대비하는 자체 모의고사가 유명해, 주말에는 전국에서 1만여 명이 수업을 들으러 온다. 이 학원의 월 수강비는 208만원. 독서실비, 급식비, 교재비, 자체 모의고사비 등 콘텐츠비까지 합치면 한 달에 300만원쯤 든다는 게 학원 측 설명이다. A학원 관계자는 “여기 학생들은 대부분 의대를 목표로 준비한다”고 했다.

의대나 명문대 진학을 전문으로 하는 학원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 A학원에는 자연계 기준 2023학년도 수능에서 국어·수학·영어·탐구 4과목 등급의 합이 ‘5등급’ 이내면 우선 선발로 지원이 가능하다. 1과목에서만 2등급을 허용하는 셈이다. 국어·수학·영어·탐구 중 3과목 합이 6등급 이내면 성적 선발, 이른바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나 서울·연·고대 재학생은 특별 서류 전형으로 지원해야 한다. 28일 현재 우선 선발은 지원이 마감됐고, 성적 선발, 특별 서류 전형도 대기 접수만 가능하다.

◇사교육 줄이겠다며 ‘킬러 문항’ 배제하지만, 학원가는 ‘불안 마케팅’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처럼 서울 학원가는 여전히 호황이다. 오히려 ‘불안 마케팅’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수능을 5개월 앞두고 출제 경향 변화가 예상되자, “학원에서 새로운 수능에 대비해야 안정적으로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는 식이다.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 방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원가는 여름 방학을 맞아 의대반, 반수반, 외고 및 자사고 준비반 등을 대대적으로 개설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B학원은 오직 의대를 목표로 하는 의대 반수반을 최근 개강했다. 올해 초부터 수업을 듣던 수험생 200여 명에 50여 명을 추가 모집한 것인데, 대부분 마감돼 1~2자리만 남았다고 한다. 이 학원은 최근 8년간 의대·치대·한의대·수의대 합격자 2600여 명을 배출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수강비는 월 199만9000원에 급식비, 교재비까지 합치면 월 200만원 중후반대다.

대치동 C학원은 의대 반수반을 이달 중순 개설했는데 대부분 마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능 국어·수학·영어·탐구 중 3과목 합이 6등급 이내만 대기할 수 있다. 학원비는 수강비, 독서실비, 급식비, 콘텐츠비 등을 합쳐 월 270만원대다. C학원 관계자는 “30대 직장인도 한의대 합격에 성공한 적 있다”며 “직장인들도 전문직을 목표로 수능을 준비하는 추세”라고 했다.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홍다영 기자

C학원은 경기도에서 의대 기숙사반을 별도로 운영한다.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국어·수학·영어·한국사·과학 탐구 수업과 진학 상담 등을 해주며 수험생을 관리한다. 수강료 150만여 원에 기숙사비 130만여 원, 식비 80만여 원 등 월 360만여 원이 든다. 교재비, 모의고사비, 단체복비는 별도다. 올해 초부터 800여 명의 학생들이 C학원 의대 기숙사반에 입소했고, 최근 70여 명을 추가로 모집했는데 마감됐다. C학원 기숙사반 관계자는 “대기 인원만 모집 인원의 1배수인 70여 명”이라고 했다.

수험생을 대상으로 여름 방학 단과 특강도 차질없이 진행 중이다. D학원은 100~200여 명씩 6개 반을 운영하고 있는데 모든 반이 마감됐다. 국어, 수학, 영어 등 과목당 20만~60만원대까지 금액은 다양하다. D학원은 지방에서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을 위해 인근 오피스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학원과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으며 남녀 생활이 구분됐고 보증금 1000만~2000원에 월 120만~180만원이라는 식이다. 한 학원 업계 관계자는 “수능 정책이 변하며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학생과 학부모들은 불안할수록 사교육의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초등 의대반, 자사고·특목고 준비반도 성행

대치동에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의대반도 등장했다. 대기업 임원이 돼도 40대 후반~50대면 퇴직하는 현실에, 안정적이고 높은 연봉을 보장해주는 의대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다. 대치동 E학원 초등 의대반은 3년 과정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을 배울 수 있다. 원하는 교재로 원하는 진도까지 수업해주는 F학원 초등 의대반도 인기다. 방학 때 주5회 수업을 듣는 경우 월 120만원 수준이다. F학원 관계자는 “초등 의대반에서 심화 과정을 들으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수준까지 대비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자사고와 외고·과학고 등 특목고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자사고, 특목고 준비반도 성행하고 있다. 1대1로 면담하며 학생들을 위한 자기소개서 소재를 발굴해주는 특별 첨삭, 생활기록부를 위한 연구 수업, 진학을 희망하는 학교에 맞춰 면접을 준비하는 수업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