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 모(35) 씨는 지난달 중고 거래를 하려다 사기에 연루돼 은행 계좌가 지급 정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 8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7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을 올린 게 화근이었다. 김 씨는 상품권을 구매하겠다는 A씨에게 계좌 번호를 알려주고 입금 내역을 확인한 뒤 상품권을 이용할 때 필요한 인증번호(핀 번호)를 넘겼다. 그로부터 5시간 뒤 경찰에서 ‘금융사기 피해자가 신고를 해 계좌가 지급정지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알고 보니 김 씨에게 돈을 입금한 건 A씨가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 B씨였다. A씨는 김 씨에게 상품권을 사기로 한 뒤 또 다른 사이트에 같은 상품권을 판매하는 것처럼 게시글을 올려 김 씨 계좌번호에 돈을 입금하도록 한 것이다. B씨가 돈을 입금하자 A씨는 상품권을 가지고 잠적했다. 상품권을 받지 못한 B씨는 본인이 돈을 송금한 계좌주인 김 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김 씨는 돌연 모든 금융 계좌가 정지되면서 월세 납부, 신용카드 대금 결제 등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 중고 거래 과정에서 물품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동시에 접근한 뒤 중간에서 물건을 가로채는 이른바 ‘3자 사기’가 횡행하고 있다. 주로 환금성이 높은 고가 상품권이나 금붙이 등이 범죄 타깃이 된다. 상대의 신원을 정확히 모른 채 입금 여부만 확인하는 중고 거래의 특성을 이용한 범죄다. 구매자는 돈만 입금하고 물건을 받지 못하고, 판매자는 계좌를 신고당해 한 번에 두 명의 피해자가 발생하게 된다.

21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올라온 문화상품권 거래 게시글./모바일 캡처

21일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 거래 사기 피해 건수는 총 8만3214건이다. 하루 평균 228건꼴로 사기 범죄가 발생하는 셈이다. 경찰 등 수사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최근 중고 거래 피해 중 가장 흔한 유형은 ‘3자 사기’다.

중고 사기범들은 통상 재범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 사기 전력으로 시중은행에서 계좌 개설이 어렵다. 이로 인해 거래 과정에서 본인 계좌로 돈을 받을 수 없어 타인 계좌를 범죄에 악용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돈거래는 피해자들끼리 하고 범인은 물건을 중간에서 빼돌리는 형태여서 경찰 수사에도 혼선이 생긴다.

3자 사기의 범행 대상은 현금화하기 쉬운 상품권, 고가의 금붙이, 전자제품 등이다. 금융 사기 방지 플랫폼 ‘더치트’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 거래 사기 중에서 상품권 관련 건수는 총 2만5582건으로 2020년 1만3619건, 2021년 1만4049에서 1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최다 피해 품목 1위는 스마트폰·주변기기였는데 작년 상품권으로 바뀌었다.

◇ 본인이 혐의 없음 입증해야 해...풀리기까지 두 달 걸리기도

판매자는 본인도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제3의 피해자로부터 입금 계좌로 신고되면 ‘전기통신 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계좌가 지급 정지된다. 이 법에선 피해구제 신청 또는 지급정지 요청이 있는 경우나 수사기관 또는 금융감독원 등으로부터 사기이용계좌로 의심된다는 정보제공이 있는 경우, 또 피해의심 거래계좌에 대한 본인확인조치 결과 사기이용계좌로 추정되는 경우 금융기관에서 해당 계좌를 지급 정지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억울하게 은행 지급 정지를 당한 경우 이의 제기를 신청할 수 있지만 범죄 혐의가 없다는 걸 본인이 직접 증명해야 하고 은행이 확인 절차를 거쳐 승인하기까지 최수 2주에서 수개월이 걸린다. 서울시 중구에 거주하는 이 모(28) 씨도 중고 거래 플랫폼을 통해 3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팔고서 3자 사기에 연루됐다. 지급정지를 당한 이 씨는 은행에 중고 거래를 하게 된 경위를 포함해 상품권 구매내역과 중고거래 대화 내용, 상품권 사용 여부 등 증빙자료도 함께 제출했다. 중간에 경찰에서 연락이 와 은행에 제출한 증빙자료를 다시 가져가 참고인 조사도 받아야 했다. 은행에서 지급 정지가 풀린 건 이의제기 신청을 한 지 두 달 뒤였다.

김태연 법률사무소 태연 대표변호사는 “은행에서 진위 판단이 안 되니 경찰 측 참고인 조사 결과를 가져오라고 하기도 한다”며 “경찰 조사 의견서를 은행에 전달해 정상 거래라는 사실을 소명하고 계좌 지급정지가 해제되기까지 1년이 걸린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선 예방이 최우선이라는 것이 법조계 및 경찰의 조언이다. 3자 사기 피해 예방을 위해 중고 거래자들은 가급적 중고 거래 플랫폼 내 안전 결제를 이용하거나 거래 전 신분 확인을 꼼꼼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금하기 전 거래자 이름과 계좌 소유주 이름을 비교하고 계좌보다는 현금 직거래 등을 우선하는 식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3자 사기 피해자를 보면 거래하는 상대방이 다급하게 물건을 산다며 독촉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거래하기 전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며 수상한 점이 없는지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