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거주 중인 여성 김 모(38) 씨는 이달 초 15만원짜리 호신용 전기충격기를 샀다. 귀갓길 여성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성범죄를 시도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기사를 보고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뉴스를 접한 이후 혼자 밤길을 다닐 때마다 불안해서 심장이 두근거린다"며 "호신술을 배운 적도 없어 소리랑 불빛만으로도 상대를 쉽게 위협할 수 있는 전기충격기를 구매했다"고 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또래 여성 살인사건 등 범행 동기가 모호한 '묻지마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호신용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버튼을 누르면 전기소리가 제트엔진 소음과 유사한 130데시벨(㏈)까지 올라가도록 특수제작된 전기충격기는 가격이 13~15만원에 달하는 데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경찰이나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묻지마 범죄 특성상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는 셈이다.
◇ 2분기 방범용품 매출 전년 比 48% 증가...호신용품은 12% 늘어
19일 온라인 판매 플랫폼 G마켓에 따르면, 올해 4~6월 현관 잠금장치, 문에 설치하는 경보기, CCTV 등 방범용품 매출은 전년 대비 48% 늘었고 삼단봉, 경보기, 가스총 최루 스프레이 등 호신용품 매출은 12% 증가했다. 네이버 쇼핑에선 전기충격기 검색량이 5월 7~13일 2110회에서 6월 7~13일 5420회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한 호신용품 판매업체는 지난달 19일부터 이날까지 호신용품 350여 개를 판매했는데 한달 평균 판매량 200여 개를 훌쩍 웃돌았다. 이 업체에서 판매하는 특수제작 전기충격기는 버튼을 누르면 전기소리가 제트엔진 소음과 유사한 130㏈까지 올라가는데 구매 후기가 900여 개나 달릴 정도로 인기다. 이 업체 대표는 "최근 묻지마 범죄가 뉴스에 나오면서 사람들이 불안해 호신용품을 찾는 것"이라며 "작년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 때도 성범죄를 우려한 여성들이 갑자기 호신용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호신용품 판매량 증가는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이다. 2021년 서울 중구에서 전 연인을 스토킹하다 살해한 '김병찬 사건'부터 작년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 때도 오픈마켓에서 호신용품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최근에는 묻지마 범죄 관련 사건이 줄이어 나오면서 호신용품 판매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이 모(29) 씨도 20대 또래를 살해한 정유정 사건을 접한 뒤 여자친구에게 전기충격기를 선물했다. 이 씨는 "매번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줄 수 없어 전기충격기를 구매했다"며 "삼단봉과 다르게 사용법을 익히지 않아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언제나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호신용품 구매도 덩달아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범죄 발생 건수 등) 객관적인 지표와 무관하게 뉴스를 보면 (범죄) 영상이 나와 있고, 이 영상을 본 사람들은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겨 스스로 방어를 해야겠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며 "나에게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잘 인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