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에서 43년 동안 일식집을 운영했던 A씨는 작년 9월 폐업을 결정했다. 본인 소유 건물에서 식당을 운영해 임대료 부담은 없었지만, 인건비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일한다는 사람이 없어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주다보니 폐업 직전 직원 5명 인건비로 매월 1200만원을 지출했다. 전기·가스비 등 공공요금 100여만원을 내면 손에 쥐는 돈은 700만원. 자신이 소유한 건물 임대료로 받는 돈 60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A씨는 “지금은 인건비 때문에 가게가 망하기 딱 좋은 구조”라며 “내가 음식점으로 성공한 사람인데, 왜 가게를 접었겠냐. 이제는 식당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 이후에도 자영업자의 인력난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논의 중인 내년도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화 하는 등 자영업자들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20~30대의 서비스업 기피 현상이 심해지면서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내걸어도 온다는 사람이 없어진 지 오래라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영업자들은 “월 300만원을 줘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는데, 최저임금이 대체 무슨 의미냐”며 서비스 업종에 외국인 인력을 채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점포 관계자가 휴식을 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 관계 없음./뉴스1

◇ 음식점 서비스업 부족 인력 3년 만에 5배 껑충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음식점 서비스업 부족 인력은 2019년 하반기 1만2000명에서 작년 하반기 6만2000여명으로 급증했다. 정부는 인력난 해소를 위해 지난해 인력 수급이 필요한 5개 업종(제조·농축산·건설·서비스·어업)에 외국인 비전문 취업 비자(E-9)를 허용했지만, 실상 음식점 서비스업에서의 인력난은 이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외식업주 1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용형태·국적·업무에 따른 인력난 심화 인지 정도’에 따르면, 정규직이든 단기 일자리든 간에 외국인보다 한국인 인력을 구하는 게 더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1963년 개업한 이래 서울 중구에서 2대째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B씨도 인력난을 호소하는 음식점 주인 중 하나다. 50여명에 달했던 식당 직원은 코로나 직전 30여명으로, 현재는 26명으로 줄었다.

B씨는 직원 수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새로운 인력이 유입되지 않아 기존 직원들이 고령화되고 있다는 게 식당의 가장 큰 위기라고 했다. 젊은 인력이 수혈되지 않으면서 지속 성장 가능한 동력마저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현재 B씨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체로 50~70대. 수십년간 B씨와 함께 일해 식당이 63년 동안 버틸 수 있게 만든 사람들이지만, 문제는 이들의 뒤를 이을 정규직 가운데 20~40대는 1명도 없다는 점이다.

B씨는 “젊은 사람은 아예 안 온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인력 공급소에다 일용직 근로자를 구한다고 하면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50~70대다. 인력수급 인프라가 코로나 이후로 다 무너졌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임금이 상승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60여년 동안 경영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음식 맛도 있지만, 식당을 지켜줄 직원이 장기근무해 안정적으로 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터전이 조성됐던 덕분”이라며 “이제는 (식당의) 미래가 안 보인다”라고 하소연했다.

◇ “힘든 일 안 해요”…수당 덕에 ‘쿨’하게 일 그만두는 2030

자영업자들은 저출산 등으로 인해 인구구조가 변하면서 젊은 노동 인구가 줄어든 점 외에도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는 가치관의 확산이 외식업계 인력난을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봤다. 일각에선 청년들을 위한 취업장려금 등 각종 수당 덕분에 ‘3D 업종’으로 분류되는 식당 일을 하려는 사람이 줄어든 점 역시 인력난의 원인 중 하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몬’이 작년 3월 ‘MZ세대’ 구직자 11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9.3%가 ‘비정규 프리랜서’ 근로 형태의 확산을 의미하는 ‘긱 이코노미(geek economy)’ 트렌드가 더 확산될 것 같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51.9%는 필요할 때마다 계약직·임시직 등으로 일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마포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 일자리정보 게시판에 구인구직 안내문을 바라보고 있는 한 구직자의 모습./뉴스1

최근 1년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해 혼자서 일하고 있다는 카페 주인 C씨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조금만 힘들면 곧바로 그만둔다”며 “실업급여니 청년수당이니 이런 것들 때문에 일을 안 해도 생활에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영업자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딱 6개월 일한 뒤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타 가려고 4대 보험 적용 등 각종 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도 아쉬운 건 업주라 눈 딱 감고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 10년 전부터 인력난 시작된 제주…”불법체류자 고용하고 있다”

이 같은 인력난을 10년 먼저 겪은 곳이 제주도다. 제주도 인구는 2013년 60만명을 돌파한 이후 지난 4월 기준 약 69만명으로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지만, 노령화지수 역시 2015년 86.8에서 작년 125.4로 상승했다. 인구는 늘었지만, 젊은 인력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제주도는 2012년부터 인력난이 서서히 오기 시작했다”며 “제주지부에서 아르바이트를 무료로 알선해주는 무료직업소개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시급을 1만2000원 준다고 공고해도 지원자가 단 1명도 없다”고 했다.

태국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태국 외국인 노동자./뉴스1

내국인이 사라진 식당은 외국인 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다. 법무부가 2015년 2월 외국인이 제주도 음식점에서 ‘통역원’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특정활동(E-7) 취업비자 발급대상에 ‘제주특별자치도 내 음식점 통역·판매사무원’을 추가하면서 외국인 노동자 유입은 더 가속화됐다. 아예 제주도에서 일할 외국인 노동자를 식당에 연결시켜주는 전문 브로커까지 생겨난 상황이다.

그러나 E-7 비자발급을 받으려면 한국어능력평가시험 중급(2급) 이상의 한국어 능력을 보유해야 하는 등 기준이 까다로워 외국인 인력 수급에도 어려운 점이 많다. 이런 상황에 편승해 여행을 온 것처럼 제주도에 입국했다 떠나지 않고 식당 등에서 일하는 불법체류자가 증가하고 있고, 자영업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불법체류자라도 고용하지 않으면 당장 가게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제주도의 한 자영업자는 “현재 제주도에서 일하는 외국인 80%는 불법체류자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는 물론 불법체류자 임금도 법정 최저임금을 넘어선 지 오래다. 제주도에서 1993년부터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D씨는 중국인 2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 중 1명은 불법체류자다. 정상적인 비자를 발급받아 일하는 중국인 월급은 270만원, 불법체류 중인 중국인에게 주는 월급은 300만원이다.

외식업계는 지금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인력을 원활하게 데려올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중국인 외 다른 외국인들도 E-7 비자를 신청할 수 있지만, 실제로 허가가 나는 것은 대부분이 중국인이다. 외식업중앙회는 정부와 각 부처, 국회에 외식업이 외국인 인력 허용 업종으로 변경될 수 있도록 비전문취업 일반고용허가제(E-9)에 외식업을 추가해달라는 의견을 건의한 바 있다.

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인력난이 심각해 불법체류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들어 놓고 정부는 방치하고 있다”며 “중국인 외에도 베트남·캄보디아·필리핀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인력을 제공받을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