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뭔 짓 하는지 알아, 이 XX야?"

31일 오후 7시. 600여명의 인파가 몰려든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SFC) 앞 인도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관계자 여럿이 내지른 욕지거리가 울려 퍼졌다. 민노총은 2일 분신해 사망한 건설노조 강원지부 소속 양회동 씨의 분향소를 기습 설치하려 했고 경찰은 도로법을 위반하는 설치 행위를 막으려 대치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가진 양회동 추모문화제에서 경찰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스1

양측 간 대치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오후 8시30분쯤 노조원들은 자진 해산 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 일대에서 열린 2만명 규모의 민주노총 경고파업 결의대회 역시 큰 사고 없이 마무리 됐다. 시민들은 교통 체증으로 큰 불편을 겪었지만 지난 16~17일 진행된 노숙파업 때의 무분별한 도로 점거와 오물 투척, 노상방뇨, 술판 같은 상황은 재연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와 경찰이 '불법 시위 강경 대응' 방침을 여러차례 강조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날 시위 현장에는 6년 만에 캡사이신 분사기가 돌아왔다. 이 분사기에는 고추에서 추출한 캡사이신 희석액이 들어간다. 경찰은 박근혜 정부 때까지 불법 행위자의 눈 주변에 캡사이신 희석액을 분사해 시야를 막았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용하지 않았다.

정부가 강경 대응으로 선회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나라의 집회·시위 문화가 일반 시민들의 삶을 해하는 방향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전 정권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을 넓게 해석하며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한 것이 영향을 줬다. 전문가들은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처럼 불법 행위에 대한 엄정한 공권력 행사를 통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본다.

◇ 文 정부, 집회·시위 소극 대응...법원은 헌법 기본권 보장 원칙

경찰청에 따르면 집회·시위로 처벌받은 인원은 2014~2016년 매년 3000명대에서 문재인 정부 집권 1년차인 2017년 1440명으로 급감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집회 시위의 자유를 억압했던 과거와 달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덕분"이라고 했지만 경찰 내부에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 들어 경찰이 시위 현장에서 '인내 진압' 밖에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집회·시위 대응에 과도한 경찰력을 낭비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이 정부 때 출범한 경찰개혁위원회는 경찰력 행사를 최대한 절제하는 방향의 '집회·시위 자유 보장 방안'을 경찰청에 권고했다. 시위 참가자들에게 불법 도로점거 혐의를 적용하지 말고, 미신고 옥외집회여도 강제해산 해선 안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법원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데 초점을 맞춘 판결을 내놓은 것도 진보 진영의 '집회·시위 제한 최소화' 주장에 힘을 실었다. 지난 2016년 경찰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규탄 행진 구간을 교통 불편과 안전사고 우려를 이유로 제한한 것과 관련해 서울행정법원은 노조 측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헌법은 모든 국민에 대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교통 소통을 위한 집회 및 시위의 제한을 허용하되, 질서유지인을 두고 도로를 행진하는 형태의 시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금지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신고하지 않은 장소로 행진해 경찰이 불법 집회라고 통보한 뒤 물대포를 쏜 사건에 대해 2019년 대법원은 "해산 사유를 구체적으로 고지하지 않았다"며 시위 참가자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판결은 과거 민주화 운동 때 이뤄진 격렬한 시위와 그에 대한 경찰력 동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최근 집회·시위 현장이 개최 목적과 주체, 참가자 규모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띄는 점 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10여년 간 법원이 집회·시위에 있어서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한 건 사실"이라며 "집회·시위의 자유보다 일반 사람들의 통행권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고려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디서 얼마나 집회·시위를 할지 등 구체적인 기준은 입법·정책적인 결정이니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 獨, 시민 불편 초래하면 경찰 장비 사용 인정...英, 미신고 땐 벌금

독일, 영국, 프랑스 등 해외 주요국은 집회·시위의 자유가 타인의 기본권과 중요한 공익과 균형, 조화를 이루도록 공권력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독일은 직접적 폭력 행사가 없어도 연좌시위나 도로점거 등이 일반 시민에게 큰 불편을 초래한다고 판단하면 경찰봉, 최루 스프레이, 살수차 등 경찰 장비의 사용성을 인정한다. 이때 경찰 장비 사용의 적합성과 단계적 조치에 대해 현장 지휘 책임자의 재량에 맡긴다.

경찰의 해산 또는 중지에도 불구하고 계속 집회나 시위를 벌일 경우 금지 또는 미신고된 집회를 개최한 것으로 간주하고 1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으로 처벌한다.

영국은 사전에 신고하지 않거나 신고 내용과 다른 장소·시간·이동경로로 행진할 경우 공공질서법을 어긴 것으로 간주하고 주최 측에 벌금을 매긴다. 프랑스도 신고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법률로 금지된 장소에서 시위를 개최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과 7500유로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지난 정권 때는 거의 24시간 집회·시위가 이뤄져도 사실상 경찰이 적극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정권에 따라 경찰의 대응 방향에 달라지는 것도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줄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