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빨래방 점주인 성모(30)씨는 최근 동전교환기를 확인하다 동전이 한 두개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수 십 만원 어치를 채워 놓는 동전교환기가 며칠 만에 빈 통이 되는 일은 흔치 않아서다.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보니 한 여성이 며칠에 한 번씩 점포를 찾아 빨래 방을 이용하지 않고 동전만 교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씨는 “여성이 나온 CCTV 장면 사진을 경고문과 함께 동전교환기에 붙여놓자 다른 남성이 주기적으로 방문해 동전 교환만 해갔다”며 “동전 회전이 돼야 하는데 세탁기를 안 쓰고 동전만 빼가니까 지장이 크다”고 말했다.

무인매장에 비치된 동전교환기에서 대량의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가는 얌체족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은 매장을 이용하지 않고 동전만 빼간다. 동전을 구하기가 힘들어지자 가까운 무인매장을 동전 교환처로 택한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영업에 지장이 생긴다고 하지만 법적으로 단속하거나 제재할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셀프사진방에 붙어있는 경고문./소가윤 기자

26일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서울 주요 상권에 위치한 무인 빨래방, 사진기, 아이스크림 판매점 등에 비치된 동전교환기에 “매장 내 사용 목적 이외에 지폐교환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안내문을 붙이는 점주들이 늘고 있다. 몇천원 정도가 아니라 몇만원을 가져와 동전으로 바꿔가는 사람들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은 직접 동전을 구해 교환기에 채워넣는 입장에서 이런 얌체족 때문에 정작 실제 매장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불편을 겪는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시중은행에서 업무 과중을 이유로 정해진 시간에만 동전 교환 업무를 취급하고 있어 필요할 때마다 동전을 채워넣는 것도 쉽지 않다. 은행 영업점별로도 동전 교환 시간이 제각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동전 발행액은 258억98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1.5% 줄었다. 수요 자체가 줄고 있어서다. 물가가 오르면서 동전을 쓸 일이 감소하는 가운데 신용·체크카드와 모바일 결제 등이 활성화 되면서 실물 화폐 사용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다.

일부 얌체족은 동전 뿐 아니라 훼손된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거나, 고액권을 1000원짜리로 바꿔가기도 한다. 지난달 빨래방을 인수 받은 장모(50)씨는 “매주 30장 정도 천원 지폐 뭉치를 동전으로 바꿔가는 손님이 있었다. 훼손된 지폐를 교환기에 넣어 기계 고장이 생기기도 한다”며 “은행에서도 동전 교환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어 지폐를 바꾸기도 곤란해 현금 뭉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9개월째 영등포구 인근에서 셀프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강모(36)씨는 “고액권을 1000원 짜리로 다 바꿔가는 손님이 있었다. 인근 상인인 것 같다”며 “매번 은행에 가서 지폐를 바꿀 시간이 부족해 매장 이용객 외에 외부인 이용을 자제해달라는 안내문을 붙이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교환 행위를 법적으로 제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업무방해죄가 성립되려면 위력 또는 위계에 의해 업무방해가 일어나야 하는데 위계의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며 “경쟁 업체에서 고의로 동전을 소진시킬 목적으로 동전 교환을 했다면 업무방해로 볼 수도 있지만 손님이 단순히 동전이 필요해 교환해갔다면 그렇게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