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여당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했다. 회계를 공시한 노조에만 조합원이 내는 조합비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회계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공시 시스템은 오는 9월부터 운영을 시작한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는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 고용노동부 권기섭 차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4차 전체회의를 열고 노조 회계 투명성과 관련한 이 같은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취업자 88%, 노조 조합원 84% '노조 회계 공시' 찬성
노동개혁특위 위원장인 임 의원은 브리핑에서 "대부분의 기부금 단체는 국민에게 회계를 공시하고 있다"며 "세법상 기부금인 노동조합비도 다른 기부단체와 형평성 등을 고려해 세액공제와 연계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의견"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조가 공시시스템에 회계를 공시해야만 소속 조합원들이 납부한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올해 회계 결산 결과를 공시한 노조의 조합원들이 내년에 납부할 조합비부터 적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임 의원이 언급한 '국민들의 의견'은 이날 고용부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가리킨다. 고용부는 지난달 19~21일 코리아데이터네트워크에 의뢰해 취업자 1000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웹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한 결과, 취업자의 88.3%가 '노조도 세제 혜택을 받고 있으므로 다른 기부금 단체 수준으로 공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23일 밝혔다. 응답자 1000명 중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조합원은 186명이다. 이들도 84.4%가 노조 회계 공시에 찬성했다.
고용부는 노조 조합원 186명을 대상으로 추가 의견수렴을 진행했고, 그 중 160명이 응했다. 이들 중 48.1%는 '노조에서 조합비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지 않다', 46.3%는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89.4%는 노조가 회계를 공시해야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에 찬성했다. 70.0%는 정부가 노조 회계 공시와 세액공제를 연계하면 노조가 회계를 공시할 것으로 내다봤다.
◇공익단체, 결산보고서 3개월 이내 제출해야…규정 없었던 노조에도 적용
노조 조합비는 '지정기부금'에 해당한다. 현행 소득세법 시행령은 노조에 가입한 사람이 납부한 회비(조합비)를 공익성을 고려해 정하는 기부금의 범위에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말정산을 할 때 15%에 해당하는 금액이 세액공제된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연말정산에서 종교단체 외 지정기부금 세액공제를 받은 근로자는 433만6405명이고, 공제 세액은 3939억원이다. 이들 가운데 소득이 적은 면세자를 제외하고 실제 결정세액이 있는 근로자로 범위를 좁히면 총 409만6866명이 3754억원의 공제 혜택을 받았다. 상당 부분은 노조 조합비 혜택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조는 다른 공익단체와 달리 회계와 관련한 내용이 소득세법 시행령에 담겨있지 않다. 공익단체는 결산보고서를 해당 과세기간 종료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제출해야 한다. 제출하지 않으면 국세청장이 기재부 장관에게 지정 취소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노조에 대해서는 특별한 제한 규정 없이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시행령은 국회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부가 개정한다. 만약 정부가 시행령을 고친 뒤 노조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조합원들은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조합원들이 노조 지도부에 정부 방침을 따르도록 요구하도록 정부가 우회 압박하는 셈이다.
정부는 노조가 사실상 국민의 세금으로 활동을 지원받고 있으므로, 노조는 상응하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다른 기부금 단체와 같이 회계 공시와 세액공제를 연계하는 것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노조 회계 투명성은 조합원의 알권리와 신뢰를 토대로 한 자주성과 민주성을 위한 필수 전제"라며 "그렇지 않은 노조에 재정 등 국민 세금이 쓰이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했다.
다만 모든 노조가 회계 공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임 의원은 "조합원 수 1000명 이상 대형 노조가 대상"이라고 했다. 이런 노조는 300여곳이다.
◇美, 이미 회계결산 공시해 누구나 열람…전미자동차노조 보고서 592쪽
정부는 노조가 회계를 공시할 수 있도록 공시시스템을 구축한다. 노동행정 종합정보망인 '노동포털'에 공시시스템을 마련하고, 노조가 이곳에 회계결산 결과를 공표할 수 있도록 9월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미국은 노동부가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Labor-Management Reporting and Disclosure Act)을 운영하고 있다. 조합원 여부에 관계 없이 공시한 자료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한국의 금속노조와 유사한 전미자동차노조(UAW)의 2021년도 회계 연차보고서는 592쪽에 달한다. 연차보고서에는 노조의 자산과 부채, 수령금과 그 출처, 총액 1만달러(약 1300만원) 이상을 수령한 노조 임원과 직원에게 지급된 봉급과 기타 지불금 등의 정보가 담겨 있다.
정부·여당은 노조 회계 감사 강화도 추진한다. 임 의원은 "노조 회계감사원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회계감사원의 자격을 규정하겠다"며 "조합원 요구가 있는 경우 회계감사 또는 회계법인이 회계감사를 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또 조합원의 알권리 보호를 위해 회계연도 종료 후 2개월 이내에 게시판 공고 등 전체 조합원이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으로 회계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공표하도록 하기로 했다. 역시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