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이모(38)씨는 최근 자녀를 강남의 한 유명 영어 유치원에 입학시켰다. 이씨는 이 학원 입학 시험을 보기 위해 자녀에게 한 달에 40만원짜리 원어민 과외를 반 년 가량 시키기도 했다. 이씨는 "요즘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영유(영어유치원)를 보낸다"면서 "영유를 안 보내는게 바보"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학부모 김모(37)씨는 반면 최근 자녀를 영어 유치원을 보내려다 일반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입학 상담 과정에서 영어 유치원측이 강조하는 바가 오로지 영어 학습에 대한 얘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인성이나 사회성 발달에 대한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않았는데 영어만 잘하는 이기적인 아이로 키우기는 싫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의 한 유치원 인근에서 어린이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학부모들 사이에서 영어 유치원 열풍이 거세다. 일반 유치원에서 운영하는 만 3~5세 교육과정(누리과정)이 학습이 아닌 놀이 중심으로 개편되며 학습 결손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 영어 유치원을 선택하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

대입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영어가 절대평가화 되면서 수학이 당락을 좌우하는 과목으로 급부상한 것도 영어 유치원 열풍에 일조하고 있다. 유치원부터 미리 영어 조기학습을 해둬야 초중고 정규 교육과정에서 수학 선행학습을 할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영어 유치원이 대부분 전문 보육 시설이 아니라 어학원으로 등록 돼 있어, 보육 전문교사가 없고 누리과정을 따르지 않아 사회성이나 인성 발달 측면에서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사립 유치원 20% 줄었는데 영어 유치원 71% 급증

18일 교육부에 따르면 이른바 '영어 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2017년 474곳에서 지난해 811곳으로 337곳(71.1%) 증가했다. 전국 사립유치원이 2017년 4282곳에서 지난해 3446곳으로 836곳(19.5%) 줄어든 것과 반대다. 일부 인기 영어 유치원은 입시를 치러야 들어갈 수 있고 이를 위한 준비반도 있다.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전국 영어 유치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월 100만원 넘는 교습비를 받는다. 가장 비싼 곳은 한 달에 310만원 수준으로 한 해 교습비가 3700만원에 달한다. 사립대학 평균 등록금의 5배 수준이다.

'영유 열풍'에는 유치원 단계 국가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에 대한 불신도 작용했다. 교육부는 2019년 누리과정을 학습 중심에서 놀이 중심으로 개편했다. 놀이·체험활동을 통해 문자에 대한 호기심만 높이고 한글학습은 초등학교 입학 후 배우도록 한 것이다.

이로 인해 공립유치원 대부분은 영어 교육은 커녕 한글 교육도 하지 않아 학습 결손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20년 시행한 '2019 개정 누리과정 모니터링·지원방안 연구'에서 학부모 51.7%가 '놀이만 하다가 초등학교 진학 후 학교에 잘 적응할지 걱정된다'고 응답했다.

◇ "영어유치원, 표준 교육과정도 평가기관도 無...큰 투자 했다고 만족해선 안돼"

일부 학부모들은 영어 유치원이 전문 보육시설이 아닌 단순 학원으로 보육을 전공하지 않은 교사들을 고용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교육부는 지난 3월부터 두달 간 학원임에도 유치원이란 명칭을 쓰는 영어 유치원의 교습 정원, 과정, 교습비 등 운영실태 전수조사에 나섰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영어 유치원은 표준화된 교육과정이 없고 자신들이 내세우는 전문성에 의존해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교육과정을 평가하는 기관도 없다. 말이 영어 유치원이지 공식적으론 사설 학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놓고 나서 큰 투자를 했으니 됐다고 스스로 만족해버리는 경우에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며 "교사가 관련 학위나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훈련된 경력이 있는지, 영어유치원의 교육과정이 정말 좋은 것인지 직접 판단을 하고 결정해야 한다. 결국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영어 유치원의 질이 좌지우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