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조3000억원이 넘는 임금 체불이 지속되면서, 근로자 24만명과 그 가족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회 이상 체불이 반복되는 사업장이 전체의 30% 수준인데, 임금 체불액 중 80%에 달해 ‘상습 체불’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는 악의적 체불 사업주를 강제 수사하고, 상습 체불 사업주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이외에도 신용 제재를 하는 등 경제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상습 체불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노동부는 3일 국회에서 국민의힘과 당정 현안간담회를 연 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상습체불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임금을 3개월분 이상 체불하는 등 상습적으로 체불하면서 적극적인 청산 노력을 하지 않는 사업주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고용부에 따르면 임금체불 규모는 2018년 1조6500억원, 2019년 1조7200억원, 2020년 1조5800억원, 2021년 1조3500억원, 작년 1조3500억원이다. 피해 근로자는 2018년 35만명, 2019년 34만5000명, 2020년 29만5000명, 2021년 25만명, 작년 24만명이다. 이 장관은 “일본이 경제 규모가 우리보다 훨씬 큰 데, 임금체불액은 우리나라가 18배 정도 많다”며 “상습체불은 사회적 인식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부는 1년 동안 근로자 1명에게 3개월분 이상의 임금을 주지 않거나, 다수 근로자에게 5회 이상 임금을 체불하고 그 총액이 3000만원 이상인 경우를 상습체불로 규정했다. 지난해 이 기준에 해당하는 사업장은 7600곳에 달한다. 체불액은 전체(1조3500억원)의 약 60%인 8000억원이다.

현재도 임금 체불 사업주에 대해 형사 처벌과 명단 공개, 신용 제재, 지연 이자 등 여러 제재 수단이 있지만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형사 처벌은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는데, 벌금 액수가 체불액의 30% 미만인 경우가 77.6%나 된다.

이에 따라 임금 상습체불을 저지른 사업주에 대해 신용 제재, 정부 지원 제한 등 경제적 제재를 확대한다. 이정식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재산 은닉, 출석 거부 등 악의적 체불 사업주는 구속수사, 체포영장 신청 등 적극적 강제수사로 체불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임금체불이 많이 발생하는 건설업의 경우 체불 사건에 대해 ‘건살산업기본법’을 위반한 불법 하도급 여부를 필수적으로 조사한다. 위법 사실이 확인된 경우 지자체 등에 통보해 추가적인 행정조치가 이루어지게 할 방침이다.

상습체불 사업주는 국가·지자체 지원사업이나 보조가 제한되고, 1년간 공공 입찰 시 감점 등 불이익을 준다. 임금체불 자료는 신용정보기관에 제공돼, 1년간 사업주가 대출·이자율 심사나 신용카드 발급 등에 영향을 주는 신용 제재도 받게 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노동 정책 당정간담회에 참석하며 임이자 환노위 국민의힘 간사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금 체불 사업주가 체불을 청산할 수 있도록 자금 융자도 대폭 늘린다. 까다로운 융자 요건을 없애고 한도를 상향하는 한편 상환 기간도 연장할 예정이다. 상습 체불한 사업주가 돈을 빌려서라도 체불을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제재를 면제할 계획이다.

국가가 체불임금을 사업주 대신 근로자에게 지급한 뒤 사업주에게 청구하는 대지급금 제도도 개선한다. 대지급금을 갚지 않은 사업주를 신용 제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고액·반복 수급 사업장은 집중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고용부는 포괄임금제를 오·남용해 ‘공짜 야근’을 한 경우에도 임금체불이라고 판단하고, 근로감독을 강화한다. 고용부는 현재 온라인 신고센터에 포괄임금 오남용 신고가 접수된 103개 사업장을 감독하고 있으며, 하반기에는 청년층 다수 고용 업종과 장시간 근로 가능성이 높은 업종 800곳을 집중감독할 계획이다.

고용부가 제공하고 있는 임금명세서 작성 프로그램도 기능을 대폭 개선할 계획이다. 사업주가 근로자의 출퇴근 시간을 입력하면 근로시간과 임금, 각종 수당 등이 자동 계산되고, 근로자는 임금이 제대로 계산되어 지급되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고용부는 “공짜야근 근절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장관은 “피해 정도가 크거나 상습 체불사업장은 즉시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감독 후에도 체불이 지속될 경우 ‘재감독’도 하겠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다음달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장관은 “임금체불 근절이야 말로 일한 만큼 정당하게 보상받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자, 약자 보호와 노동개혁의 초석”이라며 “이번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해 임금 체불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여나가겠다”고 밝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임금은 근로자의 가장 기본적·본질적 권리”라며 “당 차원에서 체불 근절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후속 입법도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