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여의도동 트럼프월드 2차 아파트 앞. 큰 가림막이 둘러진 가운데 위로 현대오일뱅크 간판이 살짝 솟아있었다. 여의도 대표 주유소 중 하나였던 이 곳은 쌓여가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지난해 문을 닫았다. 이곳에는 지하 7층~지상 29층 규모 오피스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원유가격 상승과 친환경차 전환 가속화로 주유소들이 수익성 악화를 호소하고있다. 전국 주유소들이 줄폐업하고 있고, 1억원이 넘게 드는 폐업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근근이 영업을 이어가는 곳도 있다. 2040년까지 전체의 80%에 달하는 주유소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지난 25일 철거 중인 서울 여의도 현대오일뱅크 주유소. 한 때는 여의도 대표 주유소 중 하나로 꼽혔지만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폐업했다./홍인석 기자

◇ 주유소, 수익성 악화로 지난 5년새 600개 폐업

27일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주유소 수는 전년대비 2.1% 감소한 1만1144개소를 기록했다. 2018년 1만1750개소, 2019년 1만1700개소, 2020년 1만1589개소, 2021년 1만1378개소, 2022년 1만1144개소 순으로 매년 평균 120여개 주유소가 폐업했다.

감소세는 올해도 지속돼 1만개소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전국 주유소 수는 2010년께 1만3000여개소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줄고 있다. 지역별로는 변동이 없는 제주를 제외한 모든 시·도에서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해 감소율이 가장 큰 지역은 대전(△5.7%)이며, 서울(△5.5%), 대구(△4.1%)가 뒤를 이었다.

상표별로는 작년 기준 국내 4사 정유사가 2.4% 감소했고 무폴 주유소는 23.6% 줄었다. 알뜰주유소(석유공사‧농협‧도로공사)는 되레 3.8% 늘었다. 휴업 주유소는 2020년 249개소, 2021년 248개소, 2022년 307개소로 늘고 있다.

주유소 줄폐업은 수익성 악화 탓.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주유소 영업이익률은 2.52%로 일반 도소매업(4.06%)을 크게 밑돌았다. 주유소의 평균 영업이익은 2019년 기준 2600만원에 불과하다. 동네 식당이나 모텔보다 수입이 적다.

◇ 고유가·친환경차 전환에 설 곳 잃는 주유소

실적이 나빠진 배경으로는 고유가 영향 등이 꼽힌다. 코로나19 직후 기름값이 올라 1원이라도 싼 주유소로 손님이 몰리는 경향이 심해졌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유소들은 ‘제 살 깎기’식으로 가격을 인하하고 있다. 여기에 알뜰주유소가 퍼지면서 경쟁이 포화 상태다. 알뜰주유소는 일반 주유소보다 휘발유 기준 L당 30~40원 저렴한 편이다.

전기차·수소차 전환 가속화도 직격탄이 됐다. 정부는 친환경차 보급 대수를 지난해 136만대에서 2030년 785만대로 늘릴 계획이다. 주유소 수익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인근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는 “전기차도 있고, 기름값도 비싸지니 차를 안끌려고하는데다 요즘 사람들은 어플로 1원이라도 싼 데를 찾아서 주유하러 가니까 동네 주유소들은 죄다 알뜰 주유소에 밀린다”면서 “주유소 사장이 동네 부자란 말은 옛말이다. 망할 일만 남은 장사”라고 말했다.

국책 연구 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전기차 보급 확산에 따라 현재 약 1만1000곳인 주유소가 2040년에는 3000여개로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주유소 10개 중 8개가 문을 닫는 셈이다. 임대료와 인건비도 부담이다. 전국 주유소의 판매 마진율은 평균 5~6% 수준이지만, 카드 수수료와 각종 세금을 떼면 주유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의 영업이익률은 1% 미만으로 추산된다.

최근 정부 방침대로 정유사의 휘발유·경유 도매가가 공개되면 주유소 실적은 더 나빠질 전망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은 전국 평균 휘발유·경유 도매가를 광역시·도 단위로 세분화해 공개하는 것으로 지역별로 가격 경쟁이 불붙어 주유소 간 출혈경쟁은 한층 격화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