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에서 이를 막는 법안이 발의됐다.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국노총과 함께 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등이 지난달 15일 오후 한국노총에서 열린 2023년 더불어민주당-한국노총 고위급 정책협의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수진(비례) 민주당 의원은 13일 행정관청이 노조 회계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1일 조합원이 1000명 이상인 노조와 연합단체 334곳에 대해 재정에 관한 장부의 비치·보존 의무 준수 여부를 자율 점검한 뒤 같은 달 15일까지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해산됐거나 해산 중인 노조 16개를 뺀 점검 대상 노조는 318개이고, 그 중 2월 15일까지 점검 결과를 낸 곳은 120개에 불과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산하 노조에 자료제출을 거부하라는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고용부는 시정기간을 부여했고, 146개 노조가 점검 결과를 추가로 제출했다. 그러나 52개 노조는 끝까지 자료를 내지 않았다. 상급 단체별로는 민주노총 37개, 한국노총 8개, 기타(미가맹 등) 7개다. 민주노총은 점검 대상 64개 노조 중 59.7%가 자료를 내지 않았고, 한국노총은 점검 대상 178개 노조 중 4.7%가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고용부는 52개 노조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현장 행정조사로 위법 사항을 끝까지 확인해 법을 적용할 방침이다.

고용부는 노조법을 근거로 노조에 회계와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노조법 제27조는 “노동조합은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에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의원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은 이 노조법 제27조를 삭제하는 내용이다. 이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서 “노조의 대표자가 회계연도마다 공표해야 하는 결산결과와 운영 상황을 행정관청이 요구할 경우에 언제나 보고를 하도록 하는 것은 행정관청이 언제나 자의적으로 노조 운영에 개입할 수 있고, 이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산하 노조에 자료 제출을 거부하라고 지침을 내리면서 주장한 논리와 비슷한 취지로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반면 고용부는 헌법재판소도 정부가 노조에 대한 보충적 감독권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는 입장이다.

헌재는 2013년 7월 행정관청에 대한 노조의 자료제출 의무와 과태료 부과를 규정한 노조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우리나라 노조 현실상 조합원들이 노조 내부 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거나 감시·통제를 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노조 재정 집행과 운영에 있어서의 적법성, 민주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조합자치 또는 규약자치에만 의존할 수는 없고 행정관청의 감독이 보충적으로 요구된다”고 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봉쇄법은 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추진하는 법안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표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15일 고위급 정책협의회를 개최하고 공동결의문을 채택했다. 민주당과 한국노총은 당시 ‘5대 노동개악 저지 과제’에서 “자료제출 요구, 운영상황 보고, 단체협약 시정명령 등 노조법상 행정관청의 노조운영 개입 규정을 삭제하겠다”고 했다. 또 정부가 3분기(7~9월) 중 구축할 예정인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도 저지하겠다고 했다.

이 의원은 연세의료원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출신이다. 노조 전임간부로 근무했고, 한국노총 소속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의원은 노조법 개정안 발의 보도자료에서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노조 탄압에 대한 입법과 행정에 맞불을 놓은 셈”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