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랩퍼 이영지가 이끄는 유튜브 채널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에 올라온 동영상 하나가 6일이 지난 현재 조회수 1000만회를 넘었다. 30분 분량의 이 영상에는 아이돌그룹 블랙핑크의 지수가 출연해 이영지와 새로 발매한 음반을 비롯해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초반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도구로 술이 활용됐다. 이영지와 게스트는 위스키, 진 등 다양한 주류를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이 취기가 오르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댓글 상당수는 술 덕분에 지수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호평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에서 혼술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자 술을 주된 소재로 활용하는 유튜브 방송도 덩달아 인기다.

전문가들은 음주 행위를 여과 없이 내보내는 이같은 콘텐츠가 미성년자뿐 아니라 음주를 조장하고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음주가 초래하는 해악(害惡)에 대한 안내 없이 여가 생활로만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랩퍼 이영지가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유튜브 캡처

12일 유튜브에 ‘술’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음주 방송’을 테마로 수백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예능 채널이 다수다. 유튜브 채널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은 “쌩쥐뿔도 없는 이영지의 1:1 취중진담 쇼”라고 채널을 소개하고 있다. 매번 다른 연예인들을 초대해 술을 마시면서 진솔한 ‘취중진담’을 나누는 형식으로 구독자만 243만명에 달한다.

가수 조현아가 출연하는 ‘조현아의 목요일 밤’도 매번 다른 연예인 게스트를 초대해 술을 마시며 얘기하는 ‘음주 방송’이 핵심 콘텐츠다. 최근 가수이자 배우인 수지가 출연한 편은 조회수가 336만회를 기록했다. 작년에 종영한 슈퍼주니어 멤버인 김희철의 ‘술트리트파이터’도 마찬가지다.

연예인의 음주방송 외에도 일반인이나 인플루언서의 술 대결이나 음주를 소재로 한 유튜브 채널과 동영상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유튜브에 ‘술 먹방’을 검색하면 ‘20살이 되어 처음하는 ‘술 먹방’’, ‘아침11시 소주5병에 만취해 잠들었어요’, ‘32살 백수, 혼자 추억의 투다리에서 술먹고 사고만 치다 왔네요’ 등 동영상들이 수십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 “유튜브 채널들, 자극과 리얼함 위해 술 매개로 이용”

한국건강증진개발원(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유튜브 음주영상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유튜브의 음주 콘텐츠 100개 중 90개는 음주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거나 음주 중 부정적 행동(과음, 폭음, 폭탄주, 욕설, 성적인 묘사 등)을 보여주며, 주류 제품을 광고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이런 영상의 조회수는 평균 약 80만회로 많은 사람들이 시청했으며, 아동·청소년에게도 상당 부분 노출됐을 것으로 예상되나, 청소년 계정을 차단하는 등의 보호장치는 전무했다.

유튜브에 술 콘텐츠가 범람하는 것은 채널과 소재가 다양화되면서 시청자에게 기존의 문법을 벗어난 자극과 공감을 주기 위해서다. 술을 마시면 진솔해진다는 인식이 인기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자극과 리얼함을 위해 유튜브 프로그램들이 기존의 금기를 깨는 추세고, 술이 매개가 되면 진정성이 부여된다는 인식도 작용한다”면서 “앞으로 술 방송이 마이너 장르로 자리잡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오비맥주 건전 음주 봉사단이 '청소년 음주 타파! 성인 되어 당당하게!'라는 슬로건이 새겨진 기념품을 수험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오비맥주 제공

◇ 미성년자 시청 가능한데... “음주에 대한 선망 불러일으킬 수도”

그런데 이런 콘텐츠 대부분이 별도 성인 인증 절차 없이 시청이 가능해 청소년 음주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연예인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의 음주 행동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어 음주에 대한 선망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개발원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미디어에서 묘사된 음주장면을 시청한 후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를 설문한 결과, 약 20%(TV 프로그램 23.0%, 유튜브 방송 17.9%)가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음주는 분명히 건강에 해악이 있는 행위인데 사회적으로 너무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음주 방송이 인기를 끌면 청소년들은 음주를 당연히 해도 된다는 행위로 받아 들인다”면서 “유튜브 등에서 공개적으로 음주를 전시하는 것은 술을 권장하고 일반화하는 행위인데 판단 능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청소년 유해 매체물의 기준 마련과 규정화 등 제도적 제재 조치 마련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은 정보통신 심의규정이 있지만 유튜브는 해외 사업자여서 음주 방송에 대한 규제가 어려운 실정이다.

강창범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건강증진사업센터장은 “TV 방송의 음주장면은 방송심의규정에 근거해 문제음주장면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요청하고 있으나, 이 중 일부만 심의조치가 이뤄질 뿐만 아니라 유튜브, OTT와 같은 통신매체는 방송매체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율성이 인정되고 있어 제재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