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일(54·해사 45기) 326호국보훈연구소장은 매일 연구소 사무실에 출근하며 104명 전우의 이름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 새긴다. 최 소장은 지난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천안함 함장을 맡고 있었다. 해군에서 천안함은 중령이 함장으로 지휘하는 2급 전투함이었다.

그는 피격 이후부터 10년 넘게 천안함과 관련해 이어진 정치적 대립과 음모론, 생존장병을 향한 힐난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2021년 2월 28일 최 소장은 대령 계급으로 전역했다. 천안함을 둘러싼 잡음에 이골이 난 그는 군복을 벗으며 ‘이젠 천안함 함장이 아닌 인간 최원일의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최 소장의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전히 천안함을 두고 뒷말이 무성히 나왔다. 전역 직후인 2021년 3월,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이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천안함 재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을 냈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로 밝혀졌다. 같은 해 6월에는 휘문고 교사가 최 소장을 깎아내리는 막말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그 사이 천안함 전사자·유족·생존장병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최 소장은 다시 나설 수밖에 없었다. 30년 동안 해군 근무복을 입었던 그는 이제 매일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다.

최 소장 등 천안함 생존장병 58명은 지난해 3월 10일 국가보훈처 산하 사단법인 326호국보훈연구소를 세웠다. 올해 15일엔 사무실 개소식을 열기도 했다. 지난 22일 오후 326호국보훈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최 소장은 “안보와 전사자 예우에 진보와 보수가 어디 있겠느냐”며 “천안함 전사자의 명예를 지키고 생존장병의 국가유공자 등록에 힘쓰기 위해 보훈연구소 설립에 나섰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4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서해수호 55용사 이름을 부르기 전에 울먹이고 있다. 이날 행사에 최원일 326호국보훈연구소장도 참여했다. /연합뉴스

인터뷰 후 최 소장은 지난 24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날 행사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서해를 지키다 전사한 용사 55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서해수호전사 55명의 이름을 모두 부른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용사들의 이름을 부르기 전 26초간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기념식 이후 조선비즈와 추가 인터뷰를 가진 최 소장은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군인을 일일이 호명한 행위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며 “호명 전 슬퍼하는 모습에서 대통령의 진정성을 느꼈다”고 소회를 전했다. 최 소장은 “그동안 서해수호의 날 기념행사는 정치인에 중점을 뒀다는 성격이 짙었다면 오늘은 주인공인 유족과 참전장병을 먼저 예우하는 행사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 다음은 22일에 최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

-326호국보훈연구소를 설립한 계기가 궁금하다.

“천안함은 아직 잘못 알려진 사실이 많다. 아직도 천안함 전우들에 대해 폄훼하는 말도 무성하다. 전역 직후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개인적으로 천안함의 진실에 대해 알리려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단체를 조직해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존장병 중 일부는 아직도 국가유공자 등록을 받지 못했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길래 우리가 직접 나서야겠다고 결심하고 생존장병 57명과 힘을 합쳐 연구소를 세웠다.”

-326보훈연구소의 활동 방향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천안함 피격사건 바로 알리기 활동과 생존장병의 국가유공자 등록이 주요 활동이 될 것이다. 천안함 바로 알리기 활동으로 안보 견학·집필 활동·방송 활동 등을 할 계획이다. 또한 국가유공자 등록 절차가 복잡하다. 서류 준비에서 보훈처 심사까지, 생존장병들의 국가유공자 등록 과정을 도울 것이다. 나아가 청년 보훈의 중요성에 대한 정책 제안도 기획할 요량이다.”

-앞서 천안함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이 많다고 언급했다.

“‘천안함을 언급하면 한반도 평화가 깨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오해를 풀고자 한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거나 해군의 경계 실패라고 무턱대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많다.”

-천안함 피격 이후 13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자작극’이나 ‘좌초설’ 등 음모론이 끊이질 않는다고 생각하나.

“천안함이 공격받은 직후부터 천안함은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2010년 당시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었다. 피격 다음 날 청와대는 ‘북한의 공격 가능성이 작다’고 밝혔고 내가 보고한 어뢰 피격 판단 보고 등은 윗선에서 묵살됐다. 야권은 천안함을 그해 6월에 치른 지방선거의 제물로 삼았다.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서 자작극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었다.

천안함 피격 직후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가 끝나고도 음모론이 곳곳에서 피어났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음모론에 대응하는 정부 기관은 없었다. 처음부터 정쟁에 휩쓸리다 보니 음모론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엔 천안함 음모론이 돈벌이 수단이 됐다. 음모론자들은 유튜브 콘텐츠와 책 등을 제작해서 돈을 번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건 간단하지만 당시 사건을 자세하게 해명하는 것은 복잡하고 어렵다.”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의 326호국보훈연구소 사무실에서 최원일 326호국보훈연구소장이 조선비즈와 인터뷰 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천안함이 정쟁의 중심에 섰다면 진보와 보수 진영에서 천안함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말인가.

“진보든 보수든 천안함에 관해 관심이 적다고 생각한다. 진보는 ‘천안함을 언급하면 북한을 자극한다’고 여겨 불편해한다. 보수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021년에 국민의힘에서 천안함 생존장병 및 유가족 지원 TF를 꾸린 적 있다. 당시 당내에서 자신들끼리 임명장을 돌리고 회의 한 번 열고선 추가 논의가 없었다. 보수 측에서도 매년 3월 행사할 때만 반짝 관심을 준다.”

-휘문고 교사 막말 사례도 그렇고 천안함 승조원들에게 날카로운 말을 하는 사람 중 일부는 천안함을 패잔병으로 부르기도 한다.

“피격 직후 2010년 4월 7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생존장병 전원이 기자회견을 했다. 문제는 나를 제외하곤 당시 장병들이 군복이 아닌 환자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했다. 이때부터 패잔병 논란이 시작됐다고 본다. 그해 7월 합동참모본부는 군 형법상 전투준비태만죄 혐의를 내게 씌었다. 나라 지키던 군인을 피의자로 만들었으니 보는 사람들이 ‘경계 실패’를 운운하기 시작했다.”

-”최원일 함장은 부하들을 수장시키고 책임지지 않았다”고 발언한 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에게 올해 초 새해 선물을 보내 화제가 됐다.

“조 전 대변인에 대한 용서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는 진정성을 보이고 여러 차례 사과했다. 지난해 4월 처음 사과하고 대전 현충원 묘지를 찾아 전사자 46명 묘비에 일일이 절을 했다. 그 후에도 몇 번 만났는데 안보에는 예외가 없다는 뜻에 공감하고 천안함 관련 활동을 응원하더라. 그래서 올해 초 해군 달력과 천안함 굿즈를 보냈다.”

-천안함 유족들과 생존장병들이 우선하여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전사자의 유자녀들이 16명이다. 생존장병도 아들·딸이 있다. 이 자녀들의 아버지가 패잔병으로 기억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천안함에 대한 올바른 역사 심어줘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 우리는 당시 정권을 지킨 게 아니다. 대한민국을 지키다 북한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에 당했다. 안보에는 진보와 보수 구분이 없다. 생존장병과 유족들이 충분히 예우받도록 나도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