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으로 근무한 류미진 총경(오른쪽)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현안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이임재 총경./뉴스1

작년 핼러윈 참사 당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총경)이 부실 대응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총경 승진을 경찰청과 시·도경찰청 소속이 독식하는 현재 승진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13일 한국경찰학회보 최신호에 실린 ‘경찰서장 수행능력 제고 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올해 ‘경찰의 꽃’인 총경으로 승진한 경찰관 135명 중 지구대·파출소 소속은 1명도 없었다. 2020년 기준 지구대·파출소 정원은 전체의 약 40%(4만9862명)를 차지하고 있지만, 경찰서장이 될 수 있는 총경 승진자는 배출해내지 못한 것이다. 작년 총경으로 승진한 지구대·파출소 소속 경찰관은 서울 광진경찰서 화양지구대장이 유일했다.

반면 정원의 0.13%(168명) 수준인 홍보 부서에서는 올해 7명의 총경 승진자가 나왔다. 부서 정원 대비 1위다. 총경 승진자 수는 수사부서가 22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로 경무기획(21명), 형사(14명), 청문·여청·112(각 11명) 순이었다.

◇ 서울·경기남부·부산경찰청 제외 15개 시도경찰청 총경 승진자 0

총경 승진은 경찰청과 시·도경찰청의 주요부서 소속 경찰관들이 독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총경 승진자 중 113명(83.7%)이 경찰청과 시·도경찰청 소속이었고, 일선 경찰서 소속은 22명(16.3%)에 불과했다. 22명 중 19명은 서울경찰청 산하 경찰서 소속이었고, 경기남부경찰청·부산경찰청을 제외한 나머지 15개 시·도경찰청 산하 경찰서에서는 총경 승진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이훈 부교수는 “이러한 결과가 전체 경찰조직 구성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며 “총경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구대·파출소에서 벗어나야 하고 경찰청 또는 시·도경찰청에 근무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총경 승진제도는 향후 경찰서장으로서의 역할과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경찰관을 선발하는 데 최적화된 것이 아니라, 경찰청과 시·도경찰청 등 기획부서에 전입해 특정 부서에서 장기간 근무한 경정급 경찰관들에 대한 보상의 성격이 강하다”며 “이들이 역량을 갖추었는지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총경 승진을 독점하는 시스템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총경, 다양한 업무 경험 필요한데...경정 계급 때 성과 보상에 집중

총경들의 역량 부족은 최근 핼러윈 참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참사 당시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관리관으로 당직을 섰던 류미진 총경은 인사·교육 관련 분야 전문가로 112신고 처리에 대한 전문성이 없었다. 결국 류 총경은 최소 45분에서 1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사고를 인지했고, 늑장대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임재 총경은 참사 당일 오후 9시 1분쯤부터 무전망을 통해 대형사고를 우려하는 보고가 들어왔지만 본격적인 지시를 시작한 것은 약 1시간 34분이 지난 오후 10시 35분부터였다.

이처럼 총경은 경찰 업무 전반에 대한 이해와 지휘·통솔 능력은 물론 다양한 업무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한데, 현재 총경 승진제도는 경정 계급에서 수행한 업무 평가만으로 결정된다는 게 이 부교수의 분석이다.

이 부교수는 총경 승진심사 100점 중 60점을 차지하는 근무성적과 경험한 직책·승진기록·상벌 등은 경찰서장으로서의 역할 수행능력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평가항목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그 “관리·통솔력 부분만이 유일하게 경찰서장 역할 수행평가와 관련이 있지만 차지하는 비중은 2.6점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총경으로의 승진은 경정 계급에서의 수행한 업무성과에 대한 조직 차원의 보상에 치중돼 있다”며 “총경으로 승진한 자는 누구나 경찰서장의 역할을 당연히 수행할 수 있다는 전혀 근거 없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기획부서에 경정 보직 축소하고 일선 경찰서 배치해야”

경찰청도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2020년 11월 ‘경찰서장 수행능력심사제’를 도입한 바 있다. 총경으로 승진되면 경찰서장 자격을 부여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지휘관으로서 역량·자질 검증을 거친 적격자만 경찰서장으로 배치한다는 취지였다. 또 핼러윈 참사 이후에는 ‘관리자 자격심사제’를 도입해 역량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총경에 대해서는 경찰서장 보직을 제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부교수는 이러한 정책이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는 “경찰서장의 수행능력은 총경 이전 계급에서부터 점진적으로 갖출 수 있도록 인사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요한 것이지, 총경 승진 이후 스스로 갖추도록 기대하는 것은 편의적 행정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부교수는 경찰청과 시·도경찰청 등 기획부서에 경정 보직을 축소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경정 계급을 기획부서가 아닌 일선 경찰서에서 배치해 실무처리능력과 지휘능력을 쌓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경찰서장 보직을 ▲부서장 보직에서 승진한 경우 ▲현장대응부서에서 승진한 경우 ▲내근부서에서 승진한 경우 등으로 나눠 경과별로 경찰서장 보직 부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교수는 “경찰서장은 경찰 업무 증 특정 기능에서만 장기간 근무함으로써 경찰 전반에 걸친 현장경험과 지휘능력이 떨어지는 총경승진자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역할”이라며 “경정 계급에서부터 경찰서장으로서의 수행능력을 발전시키도록 하고 경찰서 부서장을 총경 승진심사에서 대폭 발탁해 현장대응력의 중요성과 총경으로의 승진 경로를 분명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