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을 일본 피고 기업을 대신해 우리 정부 산하 재단이 지불하도록 한 배상 방안을 발표하자 피해자 측을 대리하는 단체가 “일본 기업의 사법적 책임을 면책시켜주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6일 오후 2시, 강제동원 피해자대리인단이 서울 용산구 청파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채민석 기자

이날 서울 용산구 청파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와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미쓰비시 소송 원고 대리인단은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해법은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전범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저자세로 일관해 일본의 사과도,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일본의 그 어떤 재정적 부담도 없는 오늘의 굴욕적인 해법에 이르렀다”고도 했다.

이날 오전 정부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지난 2018년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에게 약 40억원을 일본 피고 기업 대신 우선 변제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 방식을 제안했다. 일본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을 대신해 재단이 우선 원고에게 판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비용은 포스코·KT&G·한국전력 등 대일 청구권 자금 수혜 기업 16곳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일본 피고 기업이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확정 판결을 내렸으나 피고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된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일본 정부가 2019년 7월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실시하며 한일 관계는 최악이 됐다.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소송 대리인단의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정부의 해법은 형식적인 민관협의회, 졸속적인 국회토론회, 요식행위에 그친 피해자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발표한 것”이라며 “일본의 선의에 기대어 일본의 사과도,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일본의 그 어떤 재정적 부담도 없는 해법”이라고 비난했다.

대리인단은 정부 해법에 동의하는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채권 소멸 절차를 진행하겠지만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과는 일본 기업 국내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 절차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제 3자 변제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삼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가능하지 않다”며 “해법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의 경우 한국 정부가 공탁 등의 방식으로 채권을 일방적으로 소멸시킬 수 없고, 만약 재단이 일방적으로 공탁을 해 집행사건에 제출하는 등의 행동을 한다면 집행절차에서 공탁의 무효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할 것이다”고 밝혔다.

대리인단은 피해자 중 생존한 3명은 모두 정부가 제시한 해법에 반대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정부안에 동의 의사를 밝힌 피해자나 피해자의 유가족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며 “지난 2015년 위안부 합의 때도 피해자의 의견을 무시했지만, 당시에는 일본의 사과는 있었다. 이번 해법은 위안부 합의보다 퇴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