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부터 배달 라이더 생활을 해오던 김모(30)씨는 최근 수입이 급감하면서 소속된 배달대행 업체에 그만 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토바이가 위험하다는 부모님이나 여자친구 만류에도 월 평균 400만원 이상의 수입을 거둘 수 있어 선택한 직업이었는데 요즘 콜(call)수가 바닥을 치며 무리를 해야만 평소 벌던 대로 벌 수 있는 상황이라서다.

단기 쿠팡 물류 알바를 지원한 대학생 이모(22)씨는 최근 또 다시 탈락 통보를 받았다. 벌써 4번째 탈락이다. 쿠팡이나 마켓컬리 물류센터와 같은 단기 알바 일자리는 공고가 나는 빈도수가 예전보다 줄었지만 지원자는 넘쳐 합격이 ‘하늘에 별따기’다. 이씨는 “예전처럼 쿠팡 알바가 지원만 하면 무조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면서 “선착순 마감인데 바로 접속해서 지원해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배민라이더스 남부센터에 세워진 배달용 오토바이 앞으로 한 배달 노동자가 지나가고 있다./뉴스1

코로나19로 침체된 고용을 지탱하던 쿠팡이나 배민발(發) 고용 풍선효과가 지난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점차 사라지며 고용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비대면으로 호황을 누렸던 배달이나 온라인 쇼핑 인기가 예전보다 떨어지면서 관련 고용도 줄어드는 모양새다. 시간 대비 고수익을 누릴 수 있었던 장점이 희미해지면서 임시 일자리보다는 상용직을 선호하는 풍조도 반영됐다.

21일 통계청의 1월 고용동향을 분석한 결과, 대면활동 정상화에 따라 배달라이더, 쿠팡 물류직 등이 포함된 운수창고업의 취업자 수는 전월 대비 2만6000명 감소했다.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5만1000명이 줄어 감소폭이 더 크다. 이 업종 취업자 수는 코로나 기간 2020년 12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23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증가했다가 2022년 11월(-1만2000명)부터 감소 전환해, 이제 전체 취업자 수 증가 폭 둔화를 이끌고 있다.

그래픽=편집부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선호하는 ‘긱(gig, 임시로 할 수 있는 일) 일자리’의 대표적인 두 분야가 침체되면서 같은 달 20대 취업자 수도 전년 동기 대비 4만3000명 감소했다. 종사상 지위별로 봐도 임시·일용직이 감소세를 보였다. 임시근로자와 일용근로자는 각각 5만2000명, 7만명 줄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특수를 누리던 배달앱은 지난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소비자 이탈로 수입이 줄자 라이더들도 감소세다. 통계청이 이달 발표한 온라인쇼핑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2조23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했다.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지난해 7월부터 5개월 연속 감소세다.

배달업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시기 불황을 겪는 인력을 흡수하던 ‘블랙홀’이었지만 업계에서는 슬슬 정상화가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배달 업계에는 배달 콜이 사망했다는 의미의 ‘콜사(call+死)’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고, 중고거래 시장에는 오토바이 매물이 쏟아진다. 서울 은평구에서 배달대행업체를 운영하는 박모(41)씨는 “예전엔 개나 소나 배달로 돈을 벌 수 있었다면 이젠 그렇게 쉽지가 않다”면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0년과 2021년 국내 기업 중 순고용(국민연금 취득자 수-상실자 수) 증가 규모가 가장 컸던 쿠팡은 지난해엔 최하위를 기록했다.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46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 쿠팡의 순고용 감소폭(-4903명)이 가장 컸다.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부진과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온라인 소비 감소 등이 고용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대구 풀필먼트 센터(이하 대구FC) 전경./쿠팡 제공

쿠팡뿐만 아니라 물류센터 등에 초단기 아르바이트 수요가 몰린 쿠팡(-4903명), 이마트(-1174명), 롯데쇼핑(-1029명) 등 유통기업의 순고용은 줄었다. 단시간 근로자라 할지라도 사업장에 고용된 날부터 한달간 월 8일 이상, 월 60시간 이상 일하면 국민연금 가입자 통계에 잡힌다.

일회성 물류센터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쿠팡이나 마켓컬리 등 일회성 일자리 구하기는 ‘수강신청급 경쟁’이 됐다. 특히 물류센터 위치가 인구 밀집지역 인근일 경우에는 경쟁률이 10대 1 이상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물류센터 등 유통업계 단기 일자리는 코로나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한 사람들에게 한동안 사회적 버팀목이 됐다”며 “엔데믹 과정에 따른 경제활동 재개 이후 차츰 안정화된 고용시장, 글로벌 물가 폭등과 맞물린 소비 침체 등이 최근 유통업계의 고용 추세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쿠팡의 고용 규모는 향후 물류센터 자동화 흐름에 따라 더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로봇 등을 활용한 물류센터 자동화 시스템 구축이 트렌드다. 쿠팡은 지난해 3월 대구 달성군에 인공지능(AI)를 활용한 쿠팡 대구 풀필먼트센터를 구축했다. 사람이 일일이 주문 상품을 찾아 이동하는 대신 1000여 대의 무인운반로봇(AGV)이 물건을 나르고 소팅봇이 상품을 주문 배송지별로 분류해 옮기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다만 이들 업계에서는 코로나로 닫혔던 제조업, 서비스업 등 여러 분야의 상용직 취업문이 열리면서 임시 일자리 지원자 자체가 줄어든 점도 고용 감소에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비대면 시기에는 이 산업 자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다른 대체 일자리도 줄어들었다면 지금처럼 경기가 침체되는 시기에는 불안한 일회성 일자리보다 안정적인 상용직을 구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일용직 근로자(1개월 미만 근무)는 지난 2020년 132만8000명에서 지난해 113만2000명으로 약 15%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정규직 등 상용직 근로자 수는 1452만명에서 1569만명으로 117만명(7.4%) 증가했다. 특히 지난 한 해만 80만명 이상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일용직과 상용직의 사이의 고용 형태인 임시근로자(1개월~1년 근무) 수도 같은 기간 19만명 늘어난 467만8000명을 기록했다. 코로나 때 높았던 일용직 아르바이트 수요가 상용직, 임시직 등으로 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