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교 5학년생인 아들을 둔 학부모 박모(41)씨는 작년에 남자 담임을 배정받아 주위 학부모들의 부러움을 샀다. 초등학교에서 남성 교사가 희귀해지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 남성 담임 배정이 ‘로또 당첨’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박씨는 “한 해 동안 남자 담임 선생님이 활달한 아이 성향을 잘 보살펴주셨는데, 여선생님들은 아무래도 체력이 딸리시니 힘들어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남교사 비중이 낮아지며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편향된 교육환경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교육계에서도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인만큼 교육을 위해 균형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선 남교사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여성 역차별 논란 등으로 정책이 현실화 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2023년 초등학교 예비소집에서 예비 신입생과 학부모가 1학년 교실을 살펴보는 모습.(뉴스1 DB)

◇ 올해 신임 서울 초등학교 남교사 고작 11명…10%선 붕괴, 10년 내 최저

13일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올해 서울 신임 초등 교사 중에서 남교사 수는 전체 114명 중 11명으로 그 비율이 9.6%에 그쳐 최근 10년 내 최저를 기록했다. 남성 비율은 2019학년도 14.9%에서 매년 줄어 지난해 10.6%를 기록했고, 올해는 그보다 1%포인트 더 하락했다. 공립 유·초·특수학교 교사 합격자 중 여성 비율도 작년에 이어 90%를 넘으며 교원 성비 불균형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비 불균형 현상이 심화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교직에 많이 몰리는 것과 남성들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등을 비선호하는 점에서 기인하는 고질적 현상이라는 것이 교육계의 분석이다. 아울러 남성 교사 수가 적어지면서 일이 몰려 근무환경이 열악해지고 이 때문에 남자들이 초등교사로의 진로 선택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전체 초등학교 남교사 비율은 2005년(29%) 이미 20%대를 기록했고 작년 22.8%로 뚝 떨어졌다. 지역별로는 대전(11.8%)과 서울(12.9%)의 비율이 가장 낮다.

전국에서 서울의 남교사 비중이 유독 낮은 것은 임용고시 경쟁률이 타지역에 비해 높고, 인기 지역의 경우 승진 점수가 주어지지 않아 지원 자체를 기피하는 영향이다. 서울이 고향인 윤모(32)씨도 충북에서 초등 임용고시를 치뤘다. 윤씨는 “서울지역은 임용고시 경쟁률이 타 지역에 비해 상당히 높아 지원하기 부담스럽고, 교사 월급으로 집값을 감당하기도 힘들다”며 “남성 지원자들은 연수도 비교적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지방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 초등교사 성비 무너지니… 남교사에 일 몰려 악순환

상황이 이렇다보니 남자 아이를 둔 학부모들은 남자 담임 배정을 복권 당첨과 같은 행운으로 여긴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남아의 발달 과정과 통제·교육 등에 있어 같은 성별인 남교사가 더 도움이 된다는 선입견이 강하다. 일부 학부모들은 남성 담임을 배정해달라며 민원을 넣거나 청탁까지 시도한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에서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키우는 정모(45)씨는 “아이가 커가며 말썽을 많이 부렸는데 남자 선생님이 담임을 맡았을 때는 그런 성향이 많이 줄어들었다”며 “남자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스스럼 없이 장난도 치고, 활동적인 프로그램도 많이 짜줘서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남자 담임이 줄어들다 보니 교사들도 불편함을 겪고 있다. 체육대회 준비 등 완력이 필요한 업무가 소수의 남교사들에게 몰리는가 하면 폭력적인 성향의 학생 지도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이모(32)씨는 “조숙한 초등학생들은 컨트롤 하기 힘들어서 종종 남자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았었는데 갈수록 수가 줄어들어 여러모로 곤란한 점들이 많다”며 “체육대회나 수련회 등 힘 쓸 일이 많은 행사 때 4~5명의 남자 교사들이 그 일을 다 하다보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모(35)씨는 “남자 교사가 없기도 하고, 특히 젊은 남자 교사는 근처 학교까지 포함해도 손에 꼽을 정도로 찾아보기 힘들다”며 “한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부모님들에게 ‘내년에도 담임을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연락을 받아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 남교사 할당제?… ‘여성 역차별’ 논란도

전문가들은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인만큼 교육을 위해 균형잡힌 환경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한 조직을 구성하는 인원이 하나의 성에 편향되게 되면 조직을 경영할 때 다른 성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놓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도 고질적인 남교사 가뭄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남성교사 할당제’ 필요성이 지적된다. 임용 합격자 중 남성 비율을 정해 남성의 합격문을 넓히자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성 역차별 논란을 넘을 수 없다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 교육업계 관계자는 “이미 일부 교대에는 성비 제한 제도가 있기 때문에 임용고시에도 남교사 할당제를 도입할 경우 이중 차별이 될 수 있다”며 “학령 인구도 줄어들고 있어 업무의 강도 자체도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성비로 발생하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교육부에 남교사 할당제를 건의했고, 이듬해 서울시교육청이 신규 교원 임용 시 남성 비율을 정원의 30% 이내에서 교육감이 정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모두 교육부의 반대로 시행되진 못했음. 정치권에서도 2011년 남교사 할당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