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을 마치고 서울서부지법을 나오는 윤미향 무소속 의원. /채민석 기자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기부금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1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10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문형찬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2시에 업무상횡령 등 8개 혐의로 기소된 윤 의원에 대한 선고기일을 열었다. 이는 지난 2020년 9월 윤 의원이 기소된 지 약 2년 5개월 만에 나온 판결이다.

윤 의원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 및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을 맡으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후원금 등 1억여원을 217회에 걸쳐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를 비롯해 ▲여성인권박물관 학예사 관련 문화체육관광부·서울시 국고보조금 3억원 부정수령·여성가족부 인건비 보조금 6500만원 상당 부정 수령(사기, 보조금법·지방재정법 위반) ▲관할 관청 허가 없이 불특정다수로부터 41억원 상당 기부금품 모집 및 나비 기금·강제징용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명목 1억7000만원 모금(기부금품법 위반) ▲치매 증상을 보인 길원옥 할머니 속여 7900여만원을 기부하게 함(준사기) ▲안성쉼터 매입으로 정대협 손해 가하고 신고없이 숙박업(업무상 배임 및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았다.

이중에서 재판부는 업무상 횡령혐의에 대해 일부 유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윤 의원이 개인계좌를 통해 모금을 진행했고, 이를 윤 의원이 단독으로 운용하며 장부 회계처리를 진행하지 않았다”며 “모금액을 사적 용도와 공적 용도로 구분하지 않고 금액 중 약 1718만원을 정계 활동 등 개인 용도로 사용해 횡령했다고 인정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윤 의원은 개인계좌로 모금된 정대협 자금을 횡령했고, 아무런 감독을 받지 않은 채 정대협 자금을 개인계좌에 보관하며 사적·공적 지출을 명확히 구별하지 못하게 했다”며 “정대협이나 정의연은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운영되는 단체인 만큼 투명하게 운영돼야 했지만, 윤 의원은 이러한 기대를 저버렸고 이는 우리 사회에 가지는 의미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재판부는 “윤 의원의 가족을 비롯해 국내 단체 활동가들이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는 점을 참작했다”며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여성인권박물관에 정상적으로 학예사를 두고 운영하는 것처럼 정부·지자체를 속여 보조금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학예사가 근무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검사 제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교부받았다고 보기 어렵고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윤 의원이 등록 없이 3억3000여만원의 기부금품을 모집해 이 중 5755여만원을 유용한(기부금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정의연에서 모금한 금액은 기부금품법에서 제외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정의연은 기부금품을 집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이를 관리·감독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기부금품법상 불법으로 모금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김복동의 희망 재단’ 기부금 모집, 마스크 1600장 이상 모집, ‘나비기금’ 약 4000만원 모금,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모금 등과 관련해서도 “정의연 관련 소득원으로부터 모금한 금액이기 때문에 기부금품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봐야 한다”며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모금과 관련해서도 윤 의원과 김 할머니의 관례 등을 따져봤을 때 김 할머니의 죽음을 추모하고자 하는 행위의 상당성이 인정된다. 장례식과 관련해 조문 현황이나 장례회비 명단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심신미약 상태의 길원옥 할머니를 설득해 여성인권상 상금 중 일부인 5000만원을 포함해 총 7920만원을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하게 한(준사기) 혐의와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길 할머니는 치매를 진단받은 이후로 치료를 받아왔고,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태였다”면서도 “윤 의원이 길 할머니의 심신미약 상태를 이용해 재산을 제3자에게 기부시켰다고 인정할만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2012년 현대중공업이 기부한 10억원으로 ‘안성쉼터’를 시세보다 높은 7억5000만원에 매입하며 정대협에 손해를 끼친 혐의(업무상 배임)에 대해서는 “검사가 진행한 감정평가 결과가 해당 건물의 시세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정의연이 윤 의원으로 인해 손해를 봤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안성 쉼터’를 관할 관청에 신고하지 않고 시민단체 등에 대여해 숙박비 등을 받은(공중위생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안성 쉼터를 숙박업소로 표기하거나, 광고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영리목적으로 안성 쉼터를 단독적으로 운영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윤 의원은 벌금형을 선고받으며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국회의원은 형사사건에서 집행유예를 포함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등 법률에 규정된 피선거권이 상실된 경우에 퇴직해야 한다.

윤 의원은 재판을 마치고 법원 정문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대부분 무죄로 밝혀졌다”면서 “검찰이 주장한 횡령액 1억원 중 약 1700만원이 유죄로 인정이 됐지만, 남은 항소 절차를 통해 그 부분도 충분히 소명해나갈 것이다. 함께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재판부의 선고가 나오자 법원 밖에서 윤 의원 지지층과 일부 보수 단체 회원들간의 충돌이 있기도 했다.

한편 지난달 6일 검찰은 “국민들의 자발적 선의로 모인 기부금을 할머니들에게는 단지 10%가량만 활용되고, 윤 의원 의해 사적으로 유용됐다”며 “만악의 근원이라고 할 정도로 그 의미가 크고, 비난 가능성이 높다”며 윤 의원에게 5년을 구형했다. A씨에게는 징역 3년을 구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