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환불 대란으로 피해자가 속출한 ‘머지포인트’ 운영사 머지플러스 경영진 남매가 1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머지포인트는 머지플러스가 판매한 모바일 상품권으로, 머지플러스와 계약을 맺은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머지플러스는 사업 중단 위기에도 57만명에게 머지머니 2521억원어치를 판매, 이 중 10만명이 넘는 사람에게 환불 중단 피해를 입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성보기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전자금융거래법위반·사기·횡령 등 혐의를 받는 권남희(38) 머지플러스 대표에게 징역 4년, 동생 권보군(35) 최고전략책임자(CSO)에게는 징역 8년을 선고했다. 권보군 CSO를 머지플러스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본 것이다. 또 다른 남매인 권모씨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권 CSO에게 추징금 53억원, 권씨에게는 추징금 7억원을 납부하라고 명했다.

2021년 8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서울 영등포구 머지플러스 본사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조선일보DB

법원이 공개한 삼남매의 1심 판결문을 살펴보면 머지포인트 자체가 모래사장 위에 지은 빈집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들은 혁신적인 기술 없이 그저 ‘돌려막기’만으로 사업을 운영했고 덩치를 키우는데 집중했다. 피 한 방울로 모든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며 회사를 키우다가 한순간에 파산한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와 다를 게 없었다.

처음 머지플러스 사태가 촉발된 건 지난해 8월. 회사가 머지포인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금융당국에 전자금융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것이 드러나면서다. 전자금융거래법상 결제 수단을 여러 업종에서 사용하려면 이를 금융당국에 등록해야 하는데, 머지플러스는 서비스를 제공한 지 3년이 되도록 등록을 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뒤늦게 시정 권고에 나서면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머지플러스는 서비스를 축소하고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신뢰를 잃은 소비자들은 미리 산 머지포인트에 대한 환불을 요구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머지플러스가 환불을 중단하면서 이른바 ‘머지플러스 사태’가 터진 것이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머지플러스 사태는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애초에 머지포인트 서비스는 사업 구조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머지플러스는 머지포인트를 액면가 대비 20%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했다. 구매자가 이 포인트를 머지포인트 앱에 등록하고 실제 이용 가능한 머지머니로 바꿔서 가맹점에서 쓸 수 있도록 했다. 앱에서 8000원만 내면 편의점에서 1만원을 쓸 수 있는 식이다 보니 인기를 끌었다. 티몬, 위메프, 11번가, 이마트24 등이 주요 가맹점이었다.

문제는 이런 서비스를 뒷받침해 줄 수익사업이나 투자 유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머지포인트를 나중에 구매한 사람이 지불한 돈으로 먼저 구매한 사람의 머지포인트 사용대금을 막는 ‘돌려막기’가 머지플러스의 거의 유일한 사업 방식이었다. 20%의 할인률을 적용하는 사업 구조상 가맹점에 정산해야 할 비용이 머지머니 판매대금보다 커질 수밖에 없는데, 아무런 기술이나 자금이 없다 보니 손실만 누적된 것이다. 결국 머지플러스의 당기순손실은 2019년 55억원에서 2021년 상반기엔 339억원으로 급증했다. 재무구조가 열악하다 보니 투자 유치도 불가능했고, 애초에 전자금융업 등록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픽=이은현

머지플러스 운영사는 껍데기만 남은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눈속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권씨 남매가 보낸 메시지에 따르면 이들은 ‘광고비로 50억을 쓸까’ ‘머지머니를 5만원 줄까’라는 식으로 마케팅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가입 이벤트로 통크게 쏘고 있다’ ’이벤트 리스트를 미리 공개하자’면서 머지포인트를 낮은 할인율에도 사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돌려막기’ 구조를 해결할 대안은 없이 마케팅에만 집중한 것이다.

대형 가맹점 입장에서도 머지플러스에 굳이 높은 수수료를 줄 필요가 없었다. 이마트24의 경우 머지포인트 매출의 20~30%를 차지하는 대형 가맹점이었다. 많은 고객이 머지포인트를 이용해 이마트24를 찾는 만큼 결제액에서 머지플러스가 가져가는 수수료율을 높여달라고 요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이마트24 입장에서는 편의점을 방문한 고객이 머지포인트를 사용했을 뿐이지, 머지포인트 때문에 편의점을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높은 수수료를 머지플러스에 줄 필요가 없었다. 다른 결제 수단이 충분한데 머지포인트에만 수수료율을 높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마트24는 수수료율을 낮추겠다고 했고, 머지플러스가 이마트24에서 받는 수수료 수익은 줄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가 늘어나는 와중에도 삼남매는 회사를 살리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만 몰두했다. 머지플러스 법인 자금을 횡령해 1억원 상당의 람보르기니 우르스 임차 대금을 납부하고, A뱅크 주식 2억5000만원어치를 구매했다. 교회 기부금 명목으로 약 1년 4개월 동안 5억원을 지불하기도 했다. 비자금 조성을 위해 별도 법인까지 설립해서 회사 자금을 빼돌렸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횡령 증거를 위조한 사실도 드러났다. 머지플러스 자금 6억원을 지인 A(60)씨 자녀의 유학비, 지인 B(26)씨의 보증금 등으로 빼돌린 권 CSO는 수사 시작 직후인 지난해 10월, 이들에게 정식 대여 계약을 맺은 것처럼 허위 차용증을 작성하게 했다. 증거 위조 정황을 포착한 서울남부지검 공판부(공준혁 부장검사)는 지난 15일 증거위조교사 혐의로 권 CSO를 기소했다.

지난해 8월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머지플러스 본사에 환불을 요구하는 가입자들이 환불 관련 인적사항을 모으고 있다./연합뉴스

1심 재판부는 권 CSO에 대해 “무등록 상태로 전자금융업을 영위하면서 구체적인 수익 실현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면서 “오히려 사업 규모를 확대하고 회사 자금을 무분별하게 소비해 회사 재정 상태를 악화시키고 다수의 피해를 초래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권 대표에 대해서는 “보관하던 자금은 실질적으로 머지머니를 구입한 소비자들의 상품대금을 정산하거나 환불요청에 대응하는 데 사용했어야 할 것인데, 이를 임의로 소비해 다수의 피해를 초래했다”면서 “피고인이 초범이고 이 사건으로 기소된 무렵 암이 발견돼 수술을 두 차례 받는 등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며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한편 권씨 남매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에 항소장을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