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당시 용산소방서가 인근 병원의 수용여부와 환자 중증도를 따지지 않고, 사망자와 지연환자(생존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모두 한 곳으로 이송하면서 소생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많이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순천향병원)은 지연환자를 더 받을 수 없다고 소방에 반복적으로 알렸지만, 지시가 지속적으로 내려지면서 총 79명의 사망자와 지연환자가 순천향대 서울병원으로 이송됐다.
9일 조선비즈가 확보한 서울종합방재센터의 '이태원동 구조 관련 소방 무전 기록'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소방은 오후 10시 18분부터 소방과 경찰의 인력 투입을 독촉하면서 인명 구조와 현장 통제에 나섰다.
순천향병원으로 사망자가 몰리기 시작한 건 10월 30일 오전 12시 8분부터다. 용산소방서장은 무전을 통해 "지금부터 나오는 사망자와 CPR 환자를 순천향병원으로 집결토록 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후 오전 12시 15분쯤 현장 구급대원은 "전 구급차량은 시신 순천향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니까 시신 있는 쪽으로 하나씩 오라"는 무전을 보냈다. 같은 시각 지휘팀장은 "다수의 사상자가 이송할 병원이 부족하다"고도 이송 요청을 했고, 12시 24분 용산소방서장은 다시 "모든 사망자를 순천향대학 병원으로 이송하라"고 지시했다.
첫 지시가 내려진 지 45분이 지나고, 순천향병원에 사망자가 과도하게 쏠리면서 순천향병원은 지연환자를 못 받는 상황이라고 소방에 알렸다. 오전 12시 53분 구급상황관리센터에서는 "순천향대에서 더 이상 지연환자를 못 받는다"고 상황을 전달했다. 하지만 5분 뒤에 용산소방서장은 재차 "모든 사망자는 순천향병원으로 이송할 것. 다시 한번 확인한다. 모든 구급차는 사망자를 확인하고 순천향대학병원으로 이송할 것"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순천향병원에는 당시 두 명의 소방직원이 파견돼있는 상태였지만, 오전 1시쯤 순천향병원은 이미 추가로 환자를 받을 수 없을 만큼 포화된 상태였다. 오전 1시에 순천향병원 측은 다시 한 번 지연환자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소방에 공지를 내렸고, 구급상황관리센터에서는 해당 공지를 알리면서 "고대구로병원이 지연환자 5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무전을 보냈다.
하지만 이때도 소방 지휘본부는 "관계없이 전부 다 순천향병원으로 이송하라" "다른병원 말고 순천향병원으로 이송하라"고 지시 내렸다. 오전 1시 17분 현장 구급대원은 "순천향에 대기 중인 구급차가 30대가 넘어 들어올 공간도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오전 2시 24분, 다목적실내체육관에 공간이 마련되고 나서야 사망자와 지연환자 이송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조치를 놓고 소방 내부에서도 적절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병원 수용 여부와 중증도를 고려하지 않고 환자 이송이 이뤄지면서 소생 가능성이 있는 환자가 사고 현장에서 먼 병원으로 이송되고, 사망자와 지연환자만 가까운 병원에 몰렸기 때문이다. 순천향병원은 참사 현장에서 직선거리로 약 1킬로미터(km)에 있어 가장 가까운 상급의료기관이었다.
용산소방의 순천향병원 이송 지시는 소방청 내부 지침에도 반하는 결정이었다. '119 구급대원 현장 응급처치 표준지침'에 따르면 재난사고시 환자의 중증도는 총 네 단계로 긴급, 응급, 비응급, 지연환자로 나뉜다. 이송병원을 선정할 때는 살릴 수 있는 환자 가운데 중증 환자를 근거리에,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환자는 원거리에 배치한다. 하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 때는 이런 지침이 지켜지지 않고 소생가능성이 없는 지연환자를 가장 근거리의 순천향병원에 보낸 것이다.
한 소방 내부 관계자는 "(응급환자 이송은) 중증도 분류를 한 후, 병상 정보가 파악된 구급상황관리센터의 지시에 따라 중증환자 위주로 근거리 이송이 이뤄진다"면서 "재난 상황에서는 한 곳으로 몰리기도 하지만 CPR이나 사망판정에도 인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10명 이상일 경우 상황실에서 분산 이송을 지시한다"고 말했다.
무전 기록에 따르면 참사 당일 구급상황관리센터는 오후 10시 30분부터 무전을 통해 병상정보를 공유하고 환자 증상에 따라 병원 선정을 이어갔지만, 지휘본부의 지시에 따라 근거리 순천향병원에는 사망자와 사망 추정 환자가 쏠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소방청은 이날 중대본 브리핑에서 사망자 이송으로 부상자 처리에 지장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일 소방청 119대응국장은 순천향병원에 이송된 95명 중 사망 판정을 받고 이송된 41명은 4명을 빼고 모두 응급실이 아닌 영안실로 이송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