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초학력과 학업성취도 평가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정확히 파악하고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다만 교육부는 학업성취도 평가 확대로 과거와 같은 전수평가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에는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2016년 6월 서울 종로구 배화여고에서 고2 학생들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시험(일제고사)을 치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학업성취도 평가는 일부 학생만 치르는 표집평가로 전환됐다./조선DB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 2024년부터 초3~고2 실시… 신청해 응시하는 방식

교육부는 11일 “모든 학생의 기초학력을 보장하는 국가 교육책임제 실현을 위해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2023~2027)’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종합계획은 기초학력보장법에 따라 마련됐다.

올해 3월 시행된 기초학력보장법 시행령은 학교장이 학년 시작일로부터 2개월 안에 기초학력 검사 결과와 교사·학부모 의견 등을 바탕으로 학습지원 학생을 선정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학년 초에 가려내 늦지 않게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기 위해서다.

정부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 대한 ‘진단’과 ‘지원’을 함께 강화하기로 했다. 먼저 기존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하던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 응시 대상을 2024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로 확대한다.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은 학생이 기초학력을 갖췄는지 분석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2012년 도입됐다. 학업성취도를 수준별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학력 미달 여부만 가려낸다.

컴퓨터 기반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는 올해 초6, 중3, 고2를 대상으로 시행한다. 내년에는 초5·6, 중3, 고1·2로 확대하고, 2024년부터는 초3~고2로 대상을 더 넓힌다.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는 교과 영역과 사회·정서적 역량 등을 함께 진단하는 평가다. 학교·학급 단위로 신청해 응시할 수 있으며 개인별로 신청해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학교는 진단평가로 학습 지원 학생 후보군을 선별하고, 교사 의견 등을 바탕으로 협의회에서 지원 학생을 확정한다. 교육부는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도가 20%에 못 미치는 수준을 기초학력 미달로 보고 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 /교육부 제공

교육부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늘어나는 것을 막고자 ‘다중 안전망’으로 학습을 지원한다. AI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고, 1수업 2교사제를 정규수업과 교과 보충에 적용할 계획이다. 또 기초 문해력을 강화하기 위해 초등 1~2학년의 한글 익힘 시간을 448시간에서 482시간으로 확대한다.

학습·돌봄·정서 지원을 자각적으로 하는 두드림학교를 2027년까지 모든 초·중·고교로 확대한다. 또 가정에서의 연계 지도를 활성화하고자 지원 과정에서 학부모 참여도 독려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발생한 학력격차를 줄이기 위해 학생의 수준과 희망에 따라 방과 후 소규모(1~5명) 교과보충 수업, 교원자격증 소지자 같은 보조 인력을 활용한 튜터링을 지원한다. 학생의 심리적 안정과 사회성 발달을 위한 학교 자율 프로그램 운영도 지원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尹 “학업성취도 전수평가 원하는 모든 학교 참여”… 교육부 “‘지난 정부서 폐지’ 강조한 것”

기초학력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은 증가 추세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 과목의 경우,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2017년 9.9%에서 지난해 14.2%로 높아졌다. 국어는 5.0%에서 7.1%로, 영어는 4.1%에서 9.8%로 상승했다. 코로나19도 영향을 줬다. 교육부는 “감염병 예방을 위한 등교 제한은 수업 참여도, 학업 및 학교 만족도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며 “학생 간 학습 수준 차이가 심화됐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지난해 고등학생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수학, 영어 수준이 (기초학력에) 미달되는 학생이 2017년 대비 40% 이상 급증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기초학력은 우리 아이들이 자유시민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일고 강조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줄 세우기라는 비판 뒤에 숨어 아이들의 교육을 방치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어두워질 것”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폐지한 학업성취도 전수평가를 원하는 모든 학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학생별로 밀착 맞춤형 교육을 해 국가가 책임지고 기초학력 안전망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는 학업성취도 대상 확대가 사실상 전수평가를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일제고사나 전수평가를 부활하겠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라고 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 차관은 “전수평가라는 용어를 써서 해석에 조금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며 “지난 정부에서 폐지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방점은 ‘원하는 모든 학교가 참여하도록 운영하겠다’에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특정 학년을 대상으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1998~2007년) 시기에는 표집 방식이었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2008~2016년) 시기에는 ‘일제고사’로 불린 전수평가로 전환됐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다시 중3과 고2 학생의 3%만 뽑아 실시하는 표집평가로 돌아갔다. 올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표집평가로 진행된다.

다만 진보 교육감 체제에서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학력평가가 필요하다는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번 종합계획에 포함된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는 초6·중3·고2 가운데 학교·학급별로 자율적으로 신청해 원하는 시기에 실시한다. 신청 학교가 많으면 자율평가가 사실상 전수평가처럼 작용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부산시교육청은 특성화고를 제외한 지역 전체 초·중·고교에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를 ‘필수’로 신청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내려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