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나 사별로 이른바 ‘돌싱’이 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돌싱 가구주는 2020년 기준 408만명을 기록했다. 전체 가구주 5명 중 1명은 돌싱인 셈이다. 돌싱 인구가 늘면서 사회적인 인식도 바뀌고 있다. 돌싱을 내세운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고, 이혼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시선도 사라지고 있다. 돌싱 인구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도 확대되고 있다. 조선비즈는 4회에 걸쳐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계층으로 떠오른 돌싱에 대해 조명한다.[편집자주]

30대 남성 A씨는 배우자와 이별한 지 5년 정도 된 ‘돌싱남’이다. 20대 초반에 결혼해 약 5년 간 결혼 생활을 유지했지만, 어린 나이에 등 떠밀려 한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A씨는 흔히 알려진 이혼 사유인 ‘성격차이’가 자신의 이별 사유가 될지 몰랐다고 한다. 이혼 후 일에만 몰두하던 A씨는 문득 새로운 인연과 새 출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경력을 쌓는 만족감도 컸지만, 일상 속의 외로움은 점점 견디기 힘들었다.

30대 돌싱 여성인 B씨는 올해 초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돌싱 남성을 만나 3개월 연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비록 두 사람 모두 재혼이었지만, 하객들을 불러 결혼식도 조촐하게 올렸고 지인들로부터 축하도 받았다. B씨는 “아들도 있는 돌싱녀지만, 굳이 결혼을 숨길 이유가 없다”며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나 주변 사람들에게 축하받으니 기분은 좋았다”고 했다.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의 모습. 기사 내용과 상관 없음./조선DB

재혼에 나서는 돌싱이 많아지면서 웨딩업계도 이들을 위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결혼정보회사(결정사)들은 전담팀을 만들어 돌싱 회원만 따로 관리하고, 돌싱 ‘만남의 장’ 역할을 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수년째 성장세다. 예식장들은 재혼 부부들의 결혼식을 위한 소규모 홀을 속속 갖추고 있는 추세다.

◇신혼부부 5쌍 중 1쌍은 ‘재혼 커플’… 결혼정보회사·데이팅앱서 짝 찾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혼인 건수는 2019년 23만9000여 건에서 2020년 21만4000여 건, 2021년 19만3000여 건으로 3년 간 꾸준히 감소했다. 전체 혼인 건수가 줄고 있는 와중에 그나마 20만 건 정도의 혼인 건수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재혼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는 게 웨딩업계의 설명이다.

여성가족부가 이달 발표한 ‘2022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한 신혼부부 중 여성과 남성 모두 재혼이거나 둘 중 한 명이 재혼을 한 경우는 전체의 22.2%를 차지했다. 새로 결혼하는 커플 다섯 명 중 한 명은 돌싱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재혼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돌싱 수요가 이어지자, 결혼정보회사도 ‘돌싱 전담팀’을 운영하며 관련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결혼정보회사 가연 관계자는 “과거에는 재혼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분위기였다면, 일상 속 쓸쓸함에 대한 우려나 향후 몸이 아팠을 때 서로 돌봐줄 배우자를 찾는 적극적인 돌싱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녀들이 독립한 경우 이혼하거나 사별한 부모님을 위해 몰래 결혼정보회사를 찾아 가입하는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이은현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20·30대 젊은 돌싱도 늘고 있다. 가연에서 16년 간 상담을 진행해온 강은선 커플매니저 팀장은 6년 전만 해도 돌싱 가운데 30대 중반 고객은 흔치 않았다고 회상했다. 대부분의 고객이 40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돌싱 고객 가운데 상당수가 ‘2030′이라고 한다.

강 팀장은 “돌싱 고객들은 대부분 외형이나 경제적 능력보다는 자신과 생활 방식이 비슷한 짝을 찾는다. 어렸을 때 멋 모르고 결혼했을 때보다, 자신에 대해 더 알고 나서 재혼을 통해 행복을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돌싱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 수 36만명… 골프·와인 모임도 적극적

적극적으로 만남을 추구하는 돌싱이 등장하면서 돌싱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나 데이팅앱도 성장하고 있다. 국내 최대 돌싱 온라인 커뮤니티인 ‘해피돌싱(해돌)’ 회원 수는 이달 8일 기준 36만8633명이다. 2018년(25만명)보다 44% 증가했다. 개설된 지 14년 된 해돌은 올해 기준 매달 6000여명이 신규 가입하고 있고, 월 방문자 수는 86만명에 달한다.

해돌 회원들은 온라인에서 서로 등산, 와인, 골프 등 취미 생활을 공유하거나 소규모 모임을 가지며 새 인연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모임 관련 게시글만 하루에 30~40개 수준이다. 재혼 상대를 찾을 때 생활 습관 등이 비슷한 사람을 선호하는 돌싱의 특성상 이러한 ‘취미 공유’ 문화가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 팀장은 “함께 테니스나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상대를 찾는 등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배우자를 원하는 돌싱이 많다”고 설명했다.

해돌이 운영하는 돌싱 전문 데이팅앱 ‘당돌S’를 찾는 회원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당돌S는 인증을 통해 돌싱 여부를 판단한 뒤, 서로 공유한 일상·취미를 보고 연결되는 플랫폼이다. 해돌 측에 따르면 이 데이팅앱의 회원 수는 매달 약 9~13% 증가하고 있다.

해돌을 만든 이태희 한가족시민연대 이사장은 “최근 돌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며 “방송과 언론에서도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모습들을 조명하면서 가입자 수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돌싱들은 나이와 이혼이라는 조건 때문에 일반 소개팅 앱에서는 인기가 없거나 만남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면서 “일반 소개팅 앱에선 일탈을 목적으로 하는 유부남·녀도 많다 보니 인증된 커뮤니티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결혼식 당당하게 하는 돌싱들… 재혼 커플 맞이하는 예식업계

재혼을 선택하는 돌싱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재혼’이라는 꼬리표가 부끄러워 결혼식을 하지 않거나, 가족 모임 정도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혼 커플이 예식장을 찾아 상담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특히 신랑과 신부 중 한쪽만 재혼인 경우에는 초혼 못지않게 성대하게 한다.

예식업계에는 재혼 커플을 위한 소규모 웨딩홀을 보유한 예식장이 늘고 있다. 한국예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전체 예식장 200여곳 중 소규모 홀을 보유한 예식장은 30여곳이다. 예식장들은 주로 하객들이 많이 오는 초혼부부를 상대로 영업을 벌이기 때문에 소규모 홀을 보유한 예식장이 2018년만 해도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이제는 업계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이다.

김선진 한국예식업중앙회 사무국장은 “예전에 재혼 부부들은 결혼식을 쉬쉬하거나 가족 모임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아 예식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했다”며 “하지만 이제는 결혼식을 정상적으로 하기 원하는 부부가 많아지다 보니, 예식업계도 재혼을 위한 예식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강남을 중심으로 재혼 부부들이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소규모 예식장이 잘 형성돼 있다”며 “헤어지고 새로 만나는 것이 흠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재혼 부부들이 예식장을 많이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