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려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는 시청자들의 감정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치정 멜로도, 극적인 복수극도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단숨에 인기 드라마에 올라섰다. 첫 방영 당시 0.9%였던 시청률은 13.1%까지 올랐고, 넷플릭스 비영어TV부문에서는 3주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만이 흥행 요소가 아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억지스럽지 않게 풀어내는 제작진과 작가들의 태도가 우영우라는 캐릭터를 더욱 사랑스럽게 만든다는 평가다.

많은 드라마 팬들이 실제로 우영우 같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있는지 궁금해 한다. 여러 콘텐츠를 통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의사는 만났지만 변호사는 처음인 탓이다. 한국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없지만, 미국에는 자신이 자폐인이라는 사실을 공개한 변호사가 있다. 지금은 작가이자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헤일리 모스(28)가 그 주인공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최초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 변호사인 헤일리 모스(오른쪽). 2019년 1월 변호사 선서를 하고 있다./헤일리 모스 제공

모스는 3살 무렵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진단을 받았다. 말을 하지 않는 모스를 보고 의사는 모스가 타인과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것이며, 직업을 갖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스는 타인과 소통하기 힘들 것이라는 세상의 편견을 깨고 15살 무렵 대중 앞에 섰다. 자폐에 대해 이야기하고 두 권의 책을 내는 등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스는 조선비즈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장애인 인권을 위해 나서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지만, 첫 연설 당시 가장 어린 참가자로서 나의 목소리가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모스는 2019년 1월 변호사가 됐다. 반테러 및 의료분야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드라마 속 우영우처럼 ‘사진을 찍는 듯한 기억력’을 이용해 업무 성과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로펌을 나와 인권 운동가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로펌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 모스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계속 설명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늘었으나, 이것이 곧 자폐증에 대한 이해도가 커졌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며 “우영우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헤일리 모스와의 일문일답.

-한국 독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해달라.

“변호사, 작가, 예술가이자 자폐를 가지고 있는 헤일리 모스라고 한다. 나는 플로리다에서 최초로 자폐증을 공개한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매일 자폐증 및 기타 장애와 관련된 낙인에 맞서는 다른 자폐증 변호사와 전문가들이 많이 있다고 믿는다.”

-당신은 최초로 자폐증이 있다고 공개한 변호사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기 전에 이미 15살 무렵부터 연설하고 책을 쓰는 등 자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에서 자폐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가.

“내가 자폐 판정을 받았던 1997년이나 그 이전 세대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정보나 지원이 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폐증을 과거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자폐증을 더 수용하고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직도 자폐인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많다. 대중은 자폐증이 있는 사람이 초인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만, 자폐인들은 장애 자체에 대한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그 잠재력을 무시당하기도 한다.”

-장애인 인권을 위해 나서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

“특별한 사건 같은 건 없다. 청소년 때 우연히 장애인을 위한 콘퍼런스에서 연설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연설자 중 내가 가장 어렸다. 내 목소리가 장애인을 위해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은 장애인 인권에 있어서 선진국은 아니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시위가 매일 열리고 있다.

“장애 정체성과 장애인 권리는 하나의 과정이지만, 결국 그 사회의 정의와 사랑, 그리고 장애를 수용하는 태도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을 무시하거나 침묵하기는 매우 쉽다. 그러나 사회가 장애인에 관해 관심을 가진다면 이들은 매우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장애에 대한 긍정적인 역할 모델과 함께 장애에 대한 이해, 인식, 교육이 그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디어에서 장애인을 묘사하는 방법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컷. /뉴스1

-자폐를 가진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한국에서 큰 인기다. 드라마에 대해 알고 있나.

“물론이다. 엄마가 알려줬다. 이 드라마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듣고 한국의 장애에 대한 인식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 우영우 캐릭터는 굉장히 사랑스러우며 크게 공감하고 있다. 드라마 속 한국법은 미국법과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우영우라는 캐릭터에는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우영우가 사회에서 수용되는 동시에 소외된다는 사실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변호사로 활동하며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자폐증이 있어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계속 설명해야 했다.”

-한국에 자폐증이 있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자폐는 비정상도 아니고 실패한 결과물도 아니다. 남들과 똑같이 열정적으로 꿈을 좇고 남들과 똑같이 사랑과 행복을 찾을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