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나 횡령, 배임 같은 경제범죄는 자본주의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보이스피싱이나 전세 사기 같은 범죄는 서민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기도 한다. 정부와 검경이 경제범죄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수법 탓에 피해 건수와 액수는 매년 늘고 있다. 조선비즈는 경제범죄를 심층적으로 파헤쳐 추가 피해를 막고 범죄 예방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편집자주]

지난해 4월 한 중고차매매 사이트에 ‘기아 카니발을 310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을 올린 차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고차 딜러라고 자신을 소개한 A(26)씨의 전화를 받았다. A씨는 능숙한 말투로 차주에게 “중고차 딜러인데 판매글을 보고 연락했다. 내일 10시쯤 직원을 보내 3100만원에 차량을 매수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비슷한 시간 한 중고차 딜러가 기아 카니발을 2300만원에 팔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카니발 차주의 지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B(26)씨는 “카니발 차주가 2300만원에 차량을 판매하겠다고 한다”며 “내일 10시쯤 만나 계약을 하자”고 제안했다. 차량 상태보다 저렴한 가격에 혹한 중고차 딜러는 거래를 마음 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 10시에 실제로 거래가 이뤄졌다.

3100만원에 팔겠다고 올린 카니발 차량이 어떻게 2300만원에 중고차 딜러에게 넘어가게 된 걸까.

A씨는 카니발 차주에게 세금을 핑계로 다운계약서를 작성하자고 제안했다. A씨는 차주에게 “세금과 보험료를 적게 납부하기 위해 다운계약서를 작성하고 2300만원을 먼저 입금한 뒤, 2300만원을 알려주는 계좌로 돌려 보내주면 바로 3100만원을 다시 입금하겠다”고 말했다. 약속된 다음날이 되고, B씨의 연락을 받았던 딜러는 2300만원을 차주에게 실제로 송금했다. 2300만원이 들어온 걸 본 차주는 아무런 의심없이 이를 A씨가 알려준 계좌로 다시 송금했다. 2300만원이 자신들의 계좌에 들어온 걸 확인한 A씨와 B씨는 이후 사라졌다.

서울의 한 중고차매매단지에 중고차들이 주차돼 있다./뉴스1

A씨와 B씨는 중고차 딜러도, 차주의 지인도 아니었다. 중고차매매 사이트에 올라온 판매글과 연락처만을 이용해 딜러와 차주 사이를 오가며 사기를 친 것이다. 이른바 ‘중고차 삼각사기’다.

A씨 일당의 경우 총책 1명과 바람잡이 2명, 대포통장 관리 1명 등 총 4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은 중고차 거래 시 딜러가 거래자에 대한 신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했다. 총책이 가짜 전화번호를 바람잡이들에게 지급하면, 바람잡이들은 차주와 딜러를 자연스럽게 속인다. 이후 대포통장을 관리하는 1명은 입금받은 거래대금을 수거한다.

중고차 삼각사기는 지난 몇 년 동안 유행한 사기 수법이다. 금융감독원이나 경찰도 주의를 당부했지만 관련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A씨 일당에게 당한 차주만 14명이다. 이들 일당이 중고차 삼각사기 수법으로 가로챈 금액은 총 3억4500만원에 달한다.

A씨 일당이 수십 차례에 걸쳐 범행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중고차 시장의 허술한 관행 덕분이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차량 명의이전을 신청할 경우 차량 양도 증명서를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명의이전을 할 때 대다수 차량 딜러들은 관행상 차주를 대면하지 않고 인감증명서를 전달받아 처리하거나 ‘막도장’을 이용해 서류를 제출한다. 지자체도 원칙적으로 차량 양도 증명서에 인감도장이 날인이 되지 않은 서류를 받으면 안 되지만, 일부 지자체에서는 ‘날림’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간혹 포착되고 있다.

중고차 사기를 전문으로 변호하는 김민규 법무법인 은율 변호사는 중고차 시장의 관행을 바꾸면 ‘중고차 삼각사기’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차량 딜러들은 차주가 차량 성능 검사장으로 차량을 보낼 때 조수석 대시보드 안에 인감증명서를 넣어 보내라고 요구한다”며 “직접 대면하지 않고 중고차를 거래하다 보니 차량을 판매하는 당사자를 확인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고차 삼각사기를 치는 사기꾼들 대부분이 중고차 업계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만큼, 업계의 허점을 노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씨 일당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서울서부지법 형사8단독 김우정 부장판사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 일당 4명에게 지난달 말 각각 징역 3년 6월과 징역 2년 8월, 징역 1년 6월, 징역 2년 4월을 선고했다. A씨 일당은 법의 처벌을 받았지만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는 건 쉽지 않다. 차량 거래대금이 대포통장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차량 딜러가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에도 사기를 당했다는 이유로 소비자에게 차량을 넘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소비자가 계약 성사를 주장하면서 차를 가지고 오려다가 되려 권리행사 방해죄로 처벌되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대부분 합의 수준으로 그치고, 소비자가 피해액을 구제받은 판례는 찾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중고차 삼각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선 ‘대면 거래’가 가장 중요하다. 김 변호사는 “소비자나 차주는 중고차 업계의 관행을 잘 모르고, 관련 법적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중고차 사기에 노출되기 쉽다”며 “중고차 삼각사기는 비대면으로 거래하는 관행을 노린 것인 만큼,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대면 거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