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라면하고 삼각김밥만 먹어도 3000원인데, 짜장면 한 그릇이 3000원이라니 말도 안 되죠.”

지난 6일 오후 3시 경기 광명시 하안동의 한 중국집. 점심을 지난 시간이었지만 매장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앞에 짜장면 한 그릇씩을 놓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매장 밖에 걸린 현수막에는 ‘짜장면 3000원’이라고 적혀있었다. 매주 한 번씩 가게에 식사를 하러 방문한다는 정모(66)씨는 “집에서 밥을 해먹어도 이곳에서 먹는 것보다 싸지는 않다”며 “사장님도 많이 힘들텐데 이 가격을 유지해주는 것이 고맙다”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 하안동에 있는 '박쉐프의 하안면사무소' 운영자 박서현씨가 손님과 대화를 하고 있다(위). 박쉐프의 하안면사무소에서 판매하는 3000원 짜장면./채민석 기자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탓에 각종 물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식탁 물가가 급등해 직장인 사이에서는 점심과 물가 상승을 합친 ‘런치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올해 6월 서울 기준 대표 외식품목 8개의 평균 가격은 올해 1월보다 최대 8% 상승했다. 지난 1월 5769원이었던 짜장면 평균 가격은 6월에 6262원을 기록하며 8개 품목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칼국수도 7769원에서 8269원으로 6.4% 상승했고, 김밥도 6.3% 오른 2946원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모든 식당이 가격을 올리는 건 아니다. 서민들의 지갑 사정을 고려해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을 제공하는 일명 ‘착한 가게’도 적지 않다.

경기 광명시 하안동에서 2년 6개월째 장사를 하고 있는 ‘박쉐프의 하안면사무소’는 짜장면 한 그릇을 3000원에 팔고 있다. 원래 가격은 2000원이었는데, 식재료비 상승 탓에 한 달 전 가격을 3000원으로 올렸다. 가격을 올렸지만 서울 지역 짜장면 평균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곳 사장은 과거 유명 중식당과 호텔 등에서 근무를 했던 박서현씨다. 그는 “최근 양파부터 식용유까지 안 오른 식재료가 없어 힘들다. 하지만 이곳마저 가격을 올리면 어르신들과 아이들은 어디서 외식을 할 수 있겠냐”며 “맛을 포기한 식당은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다. 순이익이 줄더라도 저렴한 가격과 음식의 질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에도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박씨는 “오전 5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재료 손질과 요리, 서빙, 설거지 등을 아내와 함께 직접 하면서 인건비를 최대한 줄였다”며 “저렴한 가격에 박리다매를 하는 것이 나름의 전략 아닌 전략이다. 그래도 다른 가게에 비해 남는 것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소방서에서 근무한다는 박씨의 친누나는 ‘나눔과 섬김의 짜장차’라는 이름으로 매주 주말 푸드트럭을 이용, 소외계층이나 산불피해 지역 등에 무료로 짜장면을 나눠주고 있다.

경기 안양시에 있는 중국집 '권선생'의 차림표./권선생 제공

경기 안양시 평촌 학원가의 ‘권선생’이라는 중국집도 ‘2000원 짜장’으로 유명하다. 권선생은 학생 유동 인구가 많은 학원가에 위치한 만큼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을 위해 찹쌀 탕수육을 5000원에 팔고 있다. 올해로 개점 10주년을 맞이한 권선생은 개점 이후로 단 한 번도 가격을 올린 적이 없다. 매일 점심·저녁시간 매장 안은 식사를 하러 온 학생들로 빈 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안양 백영고 재학생 김모(17)군은 “편의점에서 식사를 하는 것보다 저렴하다. 양도 많아서 친구들 사이에 입소문이 자자하다”고 말했다.

권선생 측은 가격 유지 비결로 ‘인건비·원가 절감’을 꼽았다. 식당 관계자는 “다른 매장은 완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우리 가게는 재료 손질부터 요리까지 모든 작업을 직접 한다”며 “지금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언젠가는 물가가 내려가겠지’라는 생각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격을 안 올리다 보니 ‘건물주 아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고 답했다.

서울 암사동의 ‘황실짜장’이나 인천 검단의 ‘북경짜장2900′ 등도 수도권에서 29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짜장면을 판매하고 있다. 두 곳 모두 지점까지 낼 정도로 지역에서 입소문을 탄 가게들이다.

박서현 사장은 “식당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닌 ‘마음을 나누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익이 조금 줄더라도 모두가 노력하면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선생 관계자도 “이러한 가게들이 더 많아져서 이 가격이 ‘당연한 가격’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