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저 오늘 밥 한 그릇만 먹었어요.”

“왜 한 그릇만 먹었어요? 더 먹지…”

지난 4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의 한 건물. 성인 남자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좁은 문을 통과해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교복을 입은 중학생과 손에 단어장을 들고 있는 취업준비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식당이 나왔다. 이들은 저마다 냄비에 담긴 김치찌개 한 그릇을 두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메뉴판에 적힌 김치찌개의 가격은 3000원. 밥과 반찬은 ‘무한리필’이다. 서빙을 해주는 종업원은 수녀복을 입고 있었다.

정릉시장 한구석에 위치한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청년밥상문간’은 2017년부터 배고픈 청춘들을 위해 3000원짜리 김치찌개를 내고 있다. 십자가 하나, 성경 구절 한 줄 걸려있지 않은 이 식당의 주인은 신부다.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는 “이곳은 그저 청년들에게 밥을 주는 장소고, 저는 밥 잘 퍼주는 인상 좋은 아저씨”라며 웃어 보였다.

이문수 신부의 김치찌개를 찾는 청년은 하루에만 330여명에 달한다. 정릉점에 하루 평균 160명이 찾아오고 있고, 작년에 문을 연 이대점은 하루 평균 130명, 개업한 지 두 달 된 낙성대점은 하루 평균 40명 정도가 이용하고 있다. 물가가 올라도 3000원이라는 가격을 유지하는 김치찌개처럼 청년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문수 신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문수 신부. /청년밥상문간 제공

-3000원이라는 가격을 보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두부에 고기까지 들어있는 김치찌개가 나왔다. 청년밥상문간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소개해달라.

“청년밥상문간은 대한민국 청년들을 응원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꿈은 있지만 여건이 녹록지 않은 청년들에게 ‘굶고 다니지는 말자’는 말을 건네고 싶은 개인 후원자들의 뜻이 모여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내어주는 식당이다.”

-청년문간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5년 여름에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청년 한 명이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했다. 당시 뉴스를 보고 그저 안타까워만 하고 있었는데, 한 수녀님이 홀몸 어르신들이나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 식당처럼 청년들이 부담없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도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건넸다. 이후 정식으로 수도원 회의 안건에 올린 뒤 2016년 4월에 운영이 결정됐다.”

-덮밥, 분식, 백반 등 청년층이 좋아할 만한 다양한 메뉴가 있다. 김치찌개를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외로이 현실을 버티는 청년들에게 따뜻함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집밥’을 구상했었다. 하지만 초반에는 요리 전문가 한 명과 저 둘이서 운영을 했기에 다양한 반찬을 곁들인 식사 제공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메뉴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안국동의 한 김치찌개 전문점을 방문했는데, 단일 메뉴임에도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봤다. 저도 김치찌개를 좋아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크게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메뉴라는 생각이 들어 김치찌개로 메뉴를 정했다. 가격을 3000원으로 정한 이유는 홀몸 어르신들이나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같이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면 청년들이 방문을 꺼리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가격을 낮춰서라도 유료로 식사를 제공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지난 4일 점심, 청년밥상문간 정릉점이 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로 꽉 차있다. /채민석 기자

-일반 식당에 비해 가격이 파격적으로 저렴하다. 인근 상인들의 반발은 없었나.

“처음 이곳(정릉시장)에 입점하기로 결심한 뒤 장소 계약을 마치자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신부님이 3000원에 김치찌개를 판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영업을 시작한 지 며칠 후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상인 한 명이 방문해 “좋은 일 하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면 어떡하냐”고 질책했다. 물론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마음도, 주변 상인들에게 피해를 주려는 의도도 없었지만 그 분들은 생업이니 민감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간판도 작게 달았고 홍보도 일절 하지 않았다. 한 두 달이 지나고 나니 상인분들이 본인 가게 매출에 큰 변동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식당의 취지를 이해해주기 시작했다.”

-가톨릭 신부가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식당에 종교적 색채가 전혀 없다.

“2015년에, 더군다나 대한민국 서울 한 복판에서 사람이 굶주림으로 죽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기가 찬 일이다. 이 식당의 목적은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이다. 가끔씩 ‘식당에서 성경 가르치고 복음도 전파해야지, 그것도 안 하면 신부가 왜 식당을 운영하냐’고 묻는 분들도 있다. 지금도 저를 ‘아저씨’ 혹은 ‘사장님’으로 알고 있는 청년들도 많다. 그저 ‘성당 안 다녀도 되고 종교를 안 가져도 되니 밥은 먹고 살자’라는 마음으로 식당을 준비한 것이기 때문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유명 TV프로그램 출연 이후로 후원이 많이 늘었을 것 같다. 현재 후원으로 물가 폭등을 감당할 수 있나.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한 뒤로 후원이 많이 늘었다. 지난해 방송인 유재석씨가 5000만원을 기부하면서 따라 후원해주는 분들도 증가했다. 후원 비율로만 보면 개인 후원이 80~90%를 차지한다. 하지만 개인 기부로 운영되는 식당인 만큼 물가가 상승한다면 후원이 줄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한다. 간혹 기업 차원에서 1000만원에서 2000만원가량 목돈을 기부하기도 한다. 감사하게도 지난달 16일에도 KT그룹희망나눔재단 ‘희망나눔인상’을 받게 돼 하반기 운영에 큰 힘을 얻었다. 앞으로는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기업의 후원을 더 많이 받으려고 고민을 하고 있다.”

청년밥상문간의 단일메뉴 김치찌개(3000원)와 라면사리(1000원). /채민석 기자

-청년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요즘 청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무엇인가.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취업’이다. 청년들은 우리 때보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한 번 실패를 하면 영영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에 떨며 살아간다. 사실 도전을 하다 보면 당연히 역경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역경이 영원한 실패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재기를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해야한다.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 청년들에게 ‘사회 안전망’을 제공해주면 어떨까 생각한다.”

-본인에게 청년이란 어떤 존재인가.

“청년은 또 다른 ‘나’다. 청년들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다보면 ‘이문수가 청년 문수에게 말을 하고 있구나’는 생각이 든다. 저 역시 젊은 시절에는 불안과 불확실성을 안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희망과 꿈을 안고 살아왔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들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사회가 청년들을 도우려고 해도 청년들이 손을 내밀지 않으면 도와줄 수가 없다. 물론 다시 힘을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인 청년들도 많겠지만,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들면 주저앉고 쉬어가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