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제기제4주택재개발 구역인 약령시로 15길 일대에는 온갖 생활 쓰레기가 가득했다. 옷장 같은 가구는 물론이고 전기장판·의류 등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자동차 1대가 겨우 지나다닐 공간을 제외하곤 길의 절반 이상이 쓰레기 더미였다. 쓰레기 더미 곳곳에 폐기물관리법 위반을 알리는 경고문도 붙어 있었다.

20일 오전 10시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거리에 쓰레기가 쌓여져 있다. /김수정 기자

동대문구 제기동의 재개발부지가 몇 년째 방치된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근 주민들은 쓰레기로 인한 악취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만, 관할 구청과 재개발 조합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제기제4주택재개발 지역은 2005년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2013년 원주민의 이주와 철거가 시작됐지만, 그 해 5월 조합원 간의 갈등으로 대법원의 조합설립 무효판결을 받게 된다. 같은 해 12월 직무대행자가 선임돼 다시 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현재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준비 중이다.

문제는 조합원 내부 갈등으로 재개발 무산 위기까지 몰리면서 일대 지역이 방치되며 주민들이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점이다. 인근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곳에서 60년 동안 거주한 박종섭(83)씨는 “며칠 전에는 쓰레기 더미에서 불이 나서 화재 신고도 들어왔다.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안 된다”며 “매번 구청 청소과와 도로교통과에 연락해서 쓰레기를 좀 치워달라고 민원을 넣어도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이곳에서 16년간 슈퍼마켓을 운영해 온 심만보(64)씨는 오전부터 빗자루를 들고나와 집 앞 주변을 치우고 있었다. 심 씨는 “문 열고 있으면 쓰레기 악취가 진동해 사람 살 수가 없다”며 “5~6년 동안 이런 상태인데 서울시 내 이런 곳이 어딨냐”고 토로했다. 이어 심씨는 “어떤 조치라도 취해야 하는데 구청과 재개발 조합이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으니 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마을 일대에 쓰레기가 쌓이면서 다른 지역에서 쓰레기를 버리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곳에서 10년 동안 거주한 박모(63)씨는 “다른 마을에서도 쓰레기 봉투를 가져와 이 곳에 버리고 가는 것 같다”며 “그러면서 고물상들 모여 필요한 물건은 들고 가고, 아닌 물건은 여기 와서 더 버리다보니 쓰레기가 산처럼 쌓이고 있다”고 했다.

20일 오전 10시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거리에 쓰레기가 쌓여져 있다. /김수정 기자

주민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지만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동대문구는 “청소는 재개발조합의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대형폐기물 신고를 한 경우나 종량제 봉투에 제대로 담아서 버리는 경우에는 구청이 치우지만 이 외에 이주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단투기 쓰레기는 재개발조합 책임이라는 것이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과거에도 재개발 조합 측에서 쓰레기를 치워주면 무단 투기하지 않도록 사후관리를 하겠다고 약속을 해서 네다섯 차례 정도 구청에서 치운 바가 있다”며 “구청에서 재개발부지를 관리해달라고 조합 측에 요청을 했는데 조합 측이 이를 지키지 않는 상황이다”고 했다.

반면 재개발조합 관계자는 “쓰레기 관련 민원이 많아 재개발 조합에서도 지속적으로 치우고 있다”며 “무단투기하는 사람들 가운데선 분리수거 개념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 조합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어 “구청에 쓰레기를 치워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을 했고 이번 달 끝나기 전에 구청과 함께 청소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개인 땅이면 재개발 조합이 치워야 하며, 일반 도로 위면 구청이 치워야 한다”며 “지금과 같이 개인 땅과 일반 도로 위 모두 쓰레기가 쌓인 상황이면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구청과 조합이 모두 나서서 청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