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6시 전북 고창군 무장면의 한 수박 하우스. 잘 익은 수박들은 당도가 최고치로 올라가 표면에 하얀 가루가 올라온 상태였다. 제철인 수박을 따기 위해 4명의 한국인, 4명의 외국인이 한 팀이 돼 분주하게 수확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우스 안에 있던 작업자들이 덩굴에서 수박을 분리해 손으로 두드린 다음 숙성도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상품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수박들을 하우스 가운데 통로 옆에 놓아두면 다른 작업자들이 수박을 손수레에 옮겨 담았다. 하우스 한 동에서 나오는 수박은 200개 안팎. 손수레에는 20개 정도를 실을 수 있기에 작업자들은 몇 번이나 하우스 안팎을 오가야 했다.

19일 오전 전북 고창군의 한 비닐 하우스에서 작업자가 수박을 옮기고 있다. /김민국 기자

여기서 끝이 아니다. 트럭 아래에 있는 작업자가 손수레로 실어온 수박을 집어서 위로 던지면 트럭 위에 있는 다른 작업자가 이를 받아서 트럭의 짐칸에 쌓아뒀다. 수박 작황이 좋은 만큼 이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한 작업자가 “너는 왜 가벼운 수레를 끌고 오냐”며 핀잔을 주자 다른 작업자가 “이것도 무겁다”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황과는 상관없이 농민들은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국인 노동자 인력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수확 작업에 차질이 생기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수박 농장주인 정모(53)씨도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보다 외국인 노동자 수가 50% 이상 줄었다”며 “올해 비가 많이 오지 않아 수박의 당도가 높아져 상품 가치는 좋지만 수확 작업을 할 8명 한 팀을 꾸리기도 굉장히 어렵다”라고 말했다.

높아진 인건비도 농가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정씨는 “2년 전 만해도 외국인 작업자 일당이 6만원 선이었는데 지금은 12만~13만원 수준”이라며 “지금은 매출의 50%까지 인건비가 늘어나 이익도 3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원활한 농촌의 인력 수급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체류 기간을 늘려줄 수 있는 비자를 일시적으로라도 발급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19일 오전 6시 10분쯤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에 있는 한 수박 농가에서는 작업자들이 수확한 수박들을 하나씩 트럭에 실고 있었다./김민소 기자

같은날 오전 6시 10분쯤,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에 있는 한 수박 농가에서도 수박 수확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었다. 수확된 수박들은 이날 오후 수원에 있는 한 도매시장으로 옮겨져,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었다. 작업자들은 수박 넝쿨에서 잘 자란 수박들을 따, 수박 받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이후 다른 작업자들이 운반기를 가져와 일렬로 세워진 수박들을 차례로 실었다. 수확이 반쯤 진행된 수박하우스 안은 달콤한 수박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운반기를 몰던 김모(55)씨는 “올해 하우스에서 나온 수박을 먹어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설탕을 뿌렸냐고 묻는다”며 “피가 얇고 부드러워 맛이 일품”이라고 말한 뒤 기자에게 수박 한 쪽을 권했다. 김씨는 “수박 맛은 최고지만, 올해는 일교차가 유독 심한 날이 많아서 기형과(정상적인 과일과는 형태가 다른 과일)도 그만큼 많았다”고 말했다. 이상기온으로 기형과의 비중이 높아진 만큼, 지난해보다 판매 가능한 수박량도 줄어 수박 가격이 오른 것을 실감하긴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올해 수박 농가의 수익은 이전 년도와 비교해 ‘도긴개긴’이라고 표현했다.

수박 농가를 운영하는 박모(64)씨도 “수박 가격이 올랐다고들 하는데, 수박 하우스 주인은 오히려 농사를 접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박씨는 “수박이 하나에 10kg씩 하다 보니 수박 농사를 위해선 젊은 인력이 필요하다”며 “요즘 시골에는 젊은 인력이 없고 외국인 인력도 부족하다 보니, 인건비가 두 배 정도 뛰어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농사를) 접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동네도 수박 농장주들이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많은데, 인력 문제로 열 곳 중 한 곳은 접은 상황”이라고 했다. 또, 그는 “하우스 수가 감소하니 그만큼 (수박) 가격은 뛰지만 인건비도 천정부지로 뛰어서 사실상 남는 게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시민들도 올여름 부쩍 비싸진 수박 가격에 놀라며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5시쯤, 서울시 금천구에 있는 한 대형마트 2층 과일 판매구역 앞은 수박 표면을 이리저리 쓰다듬거나, 힘을 실어 때려 보면서 맛과 상태를 가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고민 끝에 마음에 드는 수박을 발견했다가도 이내 가격표를 보고 구매를 포기하는 사람도 보였다. 마트 직원은 수박 코너를 찾은 사람들에게 다가와 “올해 수박이 꿀수박이다, 비가 많이 안 와서 맛이 달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지난 18일 오후 5시쯤 서울시 금천구에 있는 한 대형 마트에서 사람들이 신중하게 수박을 고르고 있다./정재훤 기자

이날 마트에서 만난 안규진(72)씨는 5분 동안 수박을 고르다가 결국 돌아섰다. 안씨는 “과일 중에서 수박을 제일 좋아해 매년 여름마다 자주 사 먹는데 올해는 수박 값이 너무 많이 비싸졌다”며 “작년에는 9~10kg대 수박도 1만3000원이면 샀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은 2만 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수박은 도·소매 가격 모두 크게 오른 상황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제공하는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지난 17일 수박 상(上)품 1통은 소매점에서 평균 2만1347원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해(1만7556원) 대비 21.6%, 평년(1만6710원) 대비 28.6% 오른 가격이다. 도매가격 역시 지난해 보다 7.16% 오른 1만6460원을 기록했다.

이날 수박 한 통을 골라 쇼핑 카트에 옮겨 담던 박모(52)씨 역시 수박 가격이 비싸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상태가 제일 괜찮은 놈으로 신중히 골랐다”며 “작년보다 가격이 몇천 원은 올라서 살지 말지 망설였다. 오늘 고른 수박이 달고 맛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