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버지 성함은 ‘이 대자 준자’ 이대준입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는 월북자가 아닙니다.”

해양경찰청과 국방부가 2년 전 서해 해역에서 북한군 총격으로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에 대해 ‘월북 추정’이라는 판단을 번복한 가운데, 유가족 측은 사건 당시 자료 공개를 위해 필요하다면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고발하겠다며 엄정 대응할 것을 밝혔다.

피살 공무원 고(故)이대준 씨의 유족 측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 규명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유족 측은 고인의 이름을 공개하며 “이제는 떳떳하게 이름을 밝힐 수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17일 오전 11시 30분쯤 서해 해역에서 피살된 고(故)이대준씨의 배우자 권영미씨가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독하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왼쪽은 고인의 친형 이래진씨/윤예원 기자

이날 고인의 친형 이래진씨는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며 정부가 월북의 정황 증거가 부족한데도 추정과 입증 불가한 자료들로 혼선을 줬다고 비판했다. 이씨는 “조작된 증거들로 자료를 호도했고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단순히 넘어갈 사항이 아닌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 전 정부를 향해 “당당할 수 있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떳떳한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인의 배우자인 권영미씨는 이 자리에서 고인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서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고인의 아들은 편지로 “아버지의 사망 발표를 시작으로 죽음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월북자 가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1년 9개월을 보냈다. 아버지는 월북자로 낙인찍혔고, 나와 어머니, 동생은 월북자 가족이 되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 국민이 적에 의해 살해당하고 시신까지 태워지는 잔인함을 당했지만, 이 일련의 과정에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사건 규명을 약속했던 윤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유족 측 법정대리인을 맡은 김기윤 변호사는 이날 정보공개청구로 1년 9개월 만에 받아본 진술서를 공개했다. 진술서에는 당시 고인과 함께 근무했던 무궁화10호 직원 7명의 진술이 담겨있었다.

김 변호사는 진술서 상 고인이 방수복을 놓고 나갔다는 직원의 진술이 있다고 설명했다. 직원 A씨는 당시 수온이 매우 낮았는데, 북으로 가기 위해서라면 그 추운 바다에 그냥 들어갔을 리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A씨는 “고인이 실종된 후 고인의 방에 가보니 방수복이 그대로 있었다”고 덧붙였다.

진술서에 따르면, 다른 직원들 역시 고인이 월북할 가능성이 작다고 말했다. 직원 B씨는 “뉴스를 봤는데, 월북이라고 나오는 게 터무니없는 말이라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직원 C씨는 고인이 월북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러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직접 근무를 하지는 않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일을 잘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굳이 월북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진술서에 따르면 고인이 북한에 관련된 방송, 서적을 봤냐는 질문에도 직원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직원은 “고인은 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없고 드라마, 스포츠 보는 것을 좋아해 정치적인 언급이나 북한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다른 직원 역시 고인이 정치색을 드러내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해경이 이러한 진술들을 무시한 채 월북에 초점을 맞추고 증거를 선택적으로 채택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이날 “해경이 왜 방수복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진술서를 받아보니 왜 해경이 1년 9개월간 공개하기를 피했는지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문재인 정부 당시 사건 관련 자료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한 자료 공개를 위해 여야 원내대표에게 열람을 건의할 계획을 밝혔다. 만약 국회의원 찬성 의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무유기 혹은 직권남용으로 고소해 발부되는 고등법원 영장을 통해 자료를 받아보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유족 측은 국방부가 전날 사건 당시 국가안보실로부터 지침을 하달받았다는 전날 보도자료를 근거로 지침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특히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을 언급하며 “민주당이 떳떳하다면 대통령지정기록물 공개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문 전 대통령 고소를 피하고 싶다면 국회의원 의결을 끌어내 달라고 밝혔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해경을 포함한 우리 정부는 당시 다각도로 첩보를 분석하고 수사를 벌인 결과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며 “보안이 생명인 안보 관련 정보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왜곡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며 이는 국가적 자해 행위”라고 반박했다.

배우자 권씨는 이에 대해 “유족이 납득할만한 증거를 가져오고 월북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라”며 “한번만 더 월북이라는 단어를 꺼내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