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가 대폭 완화되면서 식당, 카페, 술집 등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엔데믹(풍토병화)’ 분위기에도 웃지 못하는 곳이 있다. 바로 ‘대중목욕탕’이다. 어릴 적 부모님 손을 잡고 주말마다 찾던 동네 목욕탕은 코로나19를 거치며 5곳 중 1곳이 문을 닫았다. 그나마 남아있는 곳들도 힘겹게 버티고 있어 동네 목욕탕에 얽힌 추억도 함께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목욕탕이 텅 비어있다./오귀환 기자

지난 28일 오전 찾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목욕탕에는 직원 한 명이 우두커니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35년의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킨 목욕탕이지만 코로나19를 피하긴 어려웠다. 이곳에서 20년간 일한 이모(62)씨는 “얼마 전 인근 개포동에 있는 목욕탕을 포함해 5~6곳이 문을 닫았다”며 “우리는 임대료를 내지 않아 망정이지 주변은 다 망했다”고 토로했다.

탕 안으로 들어가자 남탕 직원이 말을 걸었다. 직원 이모(66)씨는 “목욕탕이 잘 돼서가 아니라, 주변 목욕탕이 다 망해서 손님이 좀 온다”며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느낌상 절반은 줄었다”고 말했다. 탕 안에서 몸을 씻고 나온 유일한 손님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손님이 아니라 이곳에서 일하는 이용사였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44년된 목욕탕을 운영하는 이모(69)씨는 체념한 표정으로 가게 한편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이씨는 “임대료 안 내는 곳들이나 버티는 거고 손님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가게 한편엔 개업 때부터 썼다는 돈통이 놓여있었지만, 손님이 오지 않아 굳게 닫혀있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목욕탕에 놓인 오래된 돈통./오귀환 기자

식당과 카페뿐 아니라 목욕장업도 거리두기 해제로 새벽까지 영업이 가능했졌지만, 목욕탕은 여전히 코로나19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목욕탕은 코로나 2년 동안 가장 심한 타격을 입은 업종 중 하나다.

서울시 목욕장업 인허가 정보에 따르면 서울시 내 목욕탕은 지난 2019년 947곳에서 이달 중순 기준 773곳으로 줄었다. 3년여 만에 173곳(18.3%)이 문을 닫은 셈이다. 한국목욕업중앙회 관계자는 “식당이나 술집은 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하며 줄을 설 정도인데 목욕탕은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남아있다”며 “집계되지 않는 휴업 수를 고려하면 사실상 영업을 안 하는 곳은 더 많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21일 오후 방문한 서울 성동구 인근 목욕탕들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까운 성수동 거리에는 맛집과 카페에 젊은 사람들이 가득하고, 줄을 선 가게도 많았지만 목욕탕은 손님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목욕탕을 찾은 이덕우(70)씨는 “주변에 있는 사우나들이 다 망해서 여기로 왔다”며 “다들 집에 욕조가 생겨서인지 목욕탕을 찾는 사람도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목욕탕이 텅 비어있다./오귀환 기자

목욕탕 종사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효과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성동구 도선동의 한 사우나에서 일하는 최준수(70)씨는 “그저께 손님이 좀 오길래 풀리나 했더니 어제 야간엔 한 명도 안 왔다”며 “제한은 풀렸지만, 여전히 사람이 없어서 그냥 버텨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우나에서 일하는 홍모(56)씨도 손님이 늘었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님은 전혀 안 늘었다”며 “폐업한 곳이 많아 이렇게 말 걸 수 있는 사우나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사람들 사이에 목욕탕을 꺼리는 분위기가 여전하다고 이야기한다. 주거환경이 개선되며 목욕장업 자체가 침체기를 겪는 가운데 코로나19가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성수동 인근 24시간 사우나에서 일하는 이모(60)씨는 “아직도 사람들은 찜찜하게 생각한다”며 “일회용 마스크를 나눠주는데도 그렇다”고 토로했다. 이날 목욕탕을 찾은 직장인 장세림(35)씨는 “이 시간대 피로를 풀려고 종종 찾는데 나까지 포함해서 손님이 3명뿐이었다”며 “코로나 전에는 10명에서 많게는 15명까지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