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직의 ‘계급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관리자급인 경감·경위는 정원보다 약 2~3배 많지만, 일선 치안을 담당해야 하는 경사·경장·순경은 정원보다 적은 상황이다.

경찰은 장기적으로 경감으로의 근속승진 비율 제한을 폐지할 방침이지만, 이미 과포화 상태인 경감 숫자만 늘어나 인사적체의 반복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경찰 계급 자체를 간소화하는 등 근본적인 방안을 통해 체질개선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체 경찰관 3명 중 1명은 경위… 인사적체 심각

19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구대장·파출소장급인 경감 근속승진 비율 제한을 아예 폐지하는 방안을 ‘핵심 아이템’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경위에서 8년을 근무한 사람 중 상위 40%만 경감으로 근속승진할 수 있는데, 이 비율 제한을 없애 경위 8년 근무 조건만 채우면 무조건 경감으로 승진시킨다는 것이다. 지금껏 경위는 지구대·파출소에서 팀장급으로 인식돼 있다.

이는 경위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기준 경위 숫자는 4만5254명으로 정원 1만5619명보다 약 3배 많다. 전체 경찰관 13만1624명 중 가장 많은 35%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청 전경. /조선DB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서도 경감으로의 근속승진 비율 제한을 풀어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의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경찰관은 “야간 근무 등 경찰의 근무환경이 열악해 일반 행정직 공무원과 비교하면 처우가 불리하다”며 “진급을 해야 급여와 연금 혜택이 늘어나기 때문에 빨리 진급하고 싶은데, 경감 자리는 적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경감 근속승진 비율 제한을 늘리거나 폐지하는 것은 법 개정 없이 대통령령인 ‘경찰공무원 승진임용 규정’만 바꾸면 된다. 그러나 경찰 안팎에서는 난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른 일반 공무원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일반직 공무원의 경우 7급에서 6급으로의 근속승진은 경찰과 마찬가지로 상위 40%만 가능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장 직원들의 요구사항이 많다”면서도 “경찰만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범정부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사안이다. 사실상 10% 올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경위 인사적체 풀면 경감이 인사적체… 조삼모사식 해결책

설령 경감으로의 근속승진 비율 제한이 폐지된다 하더라도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과포화 상태인 경감 숫자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감에서 경정으로의 승진 경쟁이 치열해지는 등 경감 인사적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경위 인사적체가 경감 인사적체로 바뀔 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셈이다. 지난달 기준 경감 숫자는 2만159명으로 이미 정원 1만369명에 비해 약 2배 많은 상황이다.

실제 경감 숫자가 많아지면서 경감이 지구대장·파출소장급으로 대우받던 시절은 지나갔다. 서울의 일선 지구대·파출소에서 경감이 팀장을 맡고 있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팀장도 아닌 순찰요원이 경감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 생존권 결의대회 장소 입구에 배치된 경찰 모습. /송복규 기자

한 경찰관은 “과거 나이 많고 경력 많은 경위들이 팀장을 맡고, 경력이 덜한 경위가 팀원을 맡았을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또다른 경찰관은 “지휘부에서는 경감 인원이 많아지는 부작용을 걱정하고 있는데, 이는 경감이 많은 현상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오는 걱정”이라고 했다.

경찰은 경감 인원 증가에 대비해 경감급 인력운용방안을 올해 중 정비할 예정이다. 특히 일선 경찰서 과장을 비롯해 지구대장·파출소장을 경정급으로 바꾸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치안 담당하는 경사·경장·순경은 정원 미달

관리자급인 경감·경정은 전체 경찰관의 50% 이상이지만, 정작 일선 치안을 담당해야 하는 경사·경장·순경은 정원 미달인 상황이다. 관리자만 많아지고 실무자는 적은 전형적인 계급 인플레이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신변보호 여성 피살 사건 등에서 경찰이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계급 인플레이션 때문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지난달 기준 순경은 1만7398명으로 정원 4만767명에 비해 절반 이상 미달인 상태다. 경장은 2만3345명, 경사는 2만738명으로 모두 정원 미달이다. 실무자인 경사·경장·순경 전체 인원보다 관리자인 경감·경정 인원이 더 많다.

이에 전문가들은 계급을 아예 줄이는 방법을 통해 체질개선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한국 경찰 조직의 가장 큰 문제가 현장 치안을 담당하는 경사·경장·순경 인원이 부족한 것”이라며 “3개 계급을 관리·감독하는 계급이 8개나 있다. 사무실은 바글바글하고 현장에 나가 도둑을 잡을 인력은 없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궁극적으로는 미국처럼 계급을 5~6개로 줄여야 하고 실무 중심으로 가야 한다”며 “승진에 연연하지 않게 하기 위해 경찰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나 사회적 평가를 제고해 경찰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