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는 ‘무속 신앙’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무당에게 점을 보거나 굿을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비상식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초 신년 운세를 보기 위해 점집을 찾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유명 무당을 만나려면 반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조선비즈는 신내림을 받은 무당과 무속 신앙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을 만나보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무속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재조명했다. [편집자주]

수천 년을 이어온 명리학에 기반을 둔 무속 신앙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가부장적이고 이분법적인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의 삶을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을 가부장제 남성에 종속된 수동적인 존재로 해석하던 과거 명리학으로는 더 이상 현대 사회 여성들의 삶과 운명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비즈는 ‘퀴어 페미니스트’ 무당 홍칼리씨를 지난달 인터뷰했다. 홍씨는 ‘신령님이 보고계셔’ 등 명리학 서적을 써낸 명리학자이자 4년차 무당이다. 임신중절과 애인의 배신을 겪으며 건강이 악화됐고, 한꺼번에 다가오는 생의 고통을 이해할 도구로 운명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2019년 여름 계룡산에서 내림굿을 받았다.

무당 홍칼리씨. /홍칼리씨 제공

홍씨는 기존의 사주풀이가 전제하고 있는 가부장적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된 해석을 내놓는지 지적했다. 그는 11년 전 처음 사주를 봤을 때 “세 번 이혼할 팔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홍씨 사주에 ‘상관(傷官)’이 세 번 들어있다는 게 이유였다. 상관은 관을 상하게 한다는 뜻이다. 남성에게 ‘관’은 조직운·소속운으로 취업·승진 운으로 풀이되지만, 여성에게는 이혼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성은 남성의 소속이라는 게 과거 명리학의 전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진출이 남성만큼 활발한 요즘에는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해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홍씨는 “예전엔 상관이 있으면 ‘남편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시집도 못 간다고 했지만, 상관이라는 글자는 남자에게 있으면 정의로운 활동으로 기존 규칙에 저항하면서 큰 뜻을 펼치는 능력을 의미한다”며 “여성에게도 같은 기운으로 작용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여자 사주에 양기가 강할 경우 ‘팔자가 세다’고 하지만, 남성의 양기는 ‘큰 일을 할 운명’으로 해석된다. 같은 운명이라도 성별에 따라 풀이가 극명히 달라지는 것이다. ‘식신(食神)’이라는 글자도 남성에겐 마음 편안하게 먹고 놀 수 있는 기운이지만, 여성에게는 자식운으로 표현된다. 가부장제가 부여한 아내와 어머니의 위치에서 여성의 사주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홍씨는 “명리학을 해석하는 사람이 여자의 최고 행복이 남편 잘 만나 자식 낳고 사랑 받으며 사는 것이라고 전제하다 보니 여성에게 양기가 강한 사주 특성이 있으면 팔자가 세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여성주의 명리학은 ‘새로운 관점’일 뿐이라고 소개한다. 여성을 남성에 종속된 존재라고 전제하는 가부장제의 편견과 고정관념의 오래된 필터를 벗겨내고 해석하기 위한 관점이라는 것이다. 홍씨는 “일반적인 학문에 성별이분법적인 관점이 스며 들어가 있는 것처럼 운명학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운명의 여덟 글자(팔자)는 바뀌지 않지만 명리학은 무한한 해석이 가능하다. 때문에 사람의 운명은 ‘무한한 변주곡’이라는 게 홍씨의 설명이다. 홍씨는 가부장제와 이성애 중심주의의 편협한 시야를 넓히면 한 사람의 삶에 대한 더 나은 조언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아울러 개인의 운명 역시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나아가기에 그를 둘러싼 환경과 세상이 나아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같은 사주팔자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는 자신의 의지, 그를 둘러싼 편견과 고정관념을 생산하는 교육과 일상적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진다. 당연하게도 나를 둘러싼 환경과 세상이 나아져야 운명도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