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는 ‘무속 신앙’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무당에게 점을 보거나 굿을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비상식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초 신년 운세를 보기 위해 점집을 찾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유명 무당을 만나려면 반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조선비즈는 신내림을 받은 무당과 무속 신앙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을 만나보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무속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재조명했다. [편집자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 초기 무당에게 코로나19에 확진되지 않도록 굿을 해달라는 문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20~30대 사이에서는 점을 보는 것이 일종의 데이트 코스로 자리잡았다. 그만큼 무속 신앙이 친근한 형태로 우리 일상 생활에 스며든 것이다.

무속 신앙은 영화·드라마의 단골 소재 중 하나다. 여기서 무당은 귀신으로 묘사되는 불가사의한 존재와 소통을 하는 인간으로 등장한다. 특정인에게 ‘살(저주)’을 날리거나 나쁜 기운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부적으로 결계를 치는 모습도 익숙한 장면이다. 악신(惡神)을 이용해 각종 음모를 꾸미려는 무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집단의 갈등구조는 무속을 주제로 한 영화·드라마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일상생활에 무속신앙이 깊게 자리잡은 것은 한반도에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실제 학계는 중국으로부터 유교·불교·도교가 전해지기 이전부터 무속 신앙이 한반도에 존재했다고 보고 있다. 가장 오래된 관련 기록은 3세기에 편찬된 ‘삼국지’ 중 위지 동이전 중 제천의례에 대한 기록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무속 신앙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주몽·혁거세 등의 시조신화에도 반영됐다. 신라시대부터 분화된 산천제와 기우제 역시 무속 신앙의 뿌리 중 하나다. 오늘날 손쉽게 볼 수 있는 굿의 역사가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로 알려져 있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한 금성당 샤머니즘 박물관에 제주도 무속에 관련된 소품들이 전시돼있다. 가운데는 제주도 삼신할미 조각상./윤예원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민속춤 중 하나인 ‘승무’를 비롯해 각종 무형문화재도 무속신앙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58호 금성당을 운영 중인 양종승 샤머니즘박물관장은 “승무도 탁발승이 민간에서 하던 것을 광대들이 배우고, 이를 다시 기녀들이 예술화시키면서 오늘날의 승무가 된 것”이라며 “태평무와 살풀이춤도 내면의 세계를 표출하는 것인데, 무당의 살풀이 의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속 신앙은 고대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현대 들어와서도 계속됐다”고 덧붙였다.

무속 신앙이 한국의 전통 문화·예술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만큼 그 역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심상교 부산대 교수는 “무속 신앙이 천대받을 대상은 아니다”며 “우리 문화 속에 있는 하나의 형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이어 “조선시대에서도, 북한에서도 무속 세계를 박멸하려 했지만 없어지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무당이 현세 사람들의 행복을 빌어주고 망자를 좋은 곳으로 안치시키는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굿이나 점사 등 각종 활동은 이러한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무당이란 신과 소통하는 존재로 인식되지만, 신내림을 받지 않고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등 굿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무당으로 볼 수 있다. 일종의 문화 예술인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전라도 지역에서 굿만 하는 ‘단골’ 집단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한 금성당 샤머니즘 박물관에 각 지역 굿에 쓰이는 무당칼, 오방기 등이 전시돼있다./윤예원 기자

기독교·불교처럼 무속 신앙도 하나의 종교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을 섬기거나, 죽은 자를 위한 의례를 하는 것은 전 세계 종교의 공통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양 관장은 “의례를 받는 대상에 음식을 바치고, 옷을 입고 어떠한 행위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종교에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무속은 민속 신앙이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어서 신통한 답변이 있을 수 없는데, 이는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독교·불교 신자가 되어 신이 존재한다는 걸 믿는 것처럼 무속 신앙을 신봉해서 무속의 세계를 믿고 그에 따른 신을 믿는 것도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며 “무속을 종교라고 해서 ‘무교’라고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무속에 대해 사람들이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유 중 하나는 무속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이런 사례에 대해 무속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비판했다. 무속 신앙 자체를 금기시할 필요는 없지만 동시에 깊게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 교수는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처럼 재미삼아 보는 것 이상으로는 안 된다”며 “점사를 치더라도 그게 내 삶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여러 정보들 중 하나 정도로만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산 인근에서 굿당을 차리고 활동하고 있는 무당 박현주씨도 “한 달에 300만원을 버는 사람이 3000만원짜리 굿을 해서는 안 된다”며 “무속 신앙에 재산을 탕진하는 것은 그 누구도 바라는 게 아니다. 지나친 건 나쁜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