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는 '무속 신앙'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무당에게 점을 보거나 굿을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비상식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초 신년 운세를 보기 위해 점집을 찾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유명 무당을 만나려면 반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조선비즈는 신내림을 받은 무당과 무속 신앙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을 만나보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무속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재조명했다. [편집자주]
영화 '곡성'에서 무속인 일광(황정민 분)은 마을 사람들을 현혹해 파멸로 이끄는 인물로 나온다. 이처럼 미디어에서 무속인은 대게 기괴하거나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어떨까. 지난 2월 말 조선비즈는 북한산 자락에서 활동하는 무속인을 직접 만나 그의 일생을 허심탄회하게 들어봤다.
박현주(56)씨는 20년 차 무속인으로 북한산 밑에 큰 법당을 지어 '순화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씨가 처음부터 무당이었던 건 아니다. 30년 전 스물일곱 살이었던 박씨는 종로에서 요식업을 하고 있었다. 한때 직원을 150명이나 거느릴 정도로 성공한 젊은 사업가였다. 장사가 제일 잘 된 날은 하루 매출 6000만원을 찍을 정도였다. 박씨는 "직원들도 모두 나를 따르고, 집도 두 채씩 살 때였다. 부러울 게 없을 정도로 성공했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어느 날 박씨는 가게를 개업할 터에 굿을 하기 위해 무속인을 불렀다. 그런데 그날 방문한 무속인 중 한 명이 박씨에게 "30대가 되면 운명이 바뀔 것이다. 그 운명을 바꾸지 않으면 가진 것을 모두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가 무엇이 바뀌느냐 묻자, 무속인은 "때가 되면 알 것"이라고만 말했다. 박씨는 콧방귀를 뀌며 그를 쫓아냈다.
그 후 서른 살이 되기까지 3년간 박씨는 시름시름 앓았다. 걸을 수도 없어 자리에 누워 지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 자연스럽게 박씨의 사업은 기울었다. 직원들에게는 월급을 줄 수 없으니 모두 내보내야 했다.
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박씨는 "갑자기 혼절해 응급실에 실려 가도 건강에는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며 "의사들은 내가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호화롭게 살다가 모든 것을 잃으니 그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빈털터리가 된 박씨는 결국 아들과 길바닥에 나앉았다. 겨우겨우 산 아래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아들과 단둘이 살아갔다. 월세가 밀려 집주인에게 머리채도 잡혔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가족들과 인연이 끊겼다.
밥 한 숟가락도 먹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박씨는 이대로는 아들과 굶어 죽을 것 같아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찾았다. 공중전화 부스에는 누군가가 남기고 간 50원이 놓여 있었다. 박씨는 그 순간 3년 전 자신에게 신을 받으라고 한 무속인이 생각났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무속인의 전화번호가 머릿속에 그대로 떠올랐다.
"박 사장인가?"
곧바로 전화를 거니 그 무속인도 박씨의 목소리를 알아봤다. 무속인은 신내림을 받아야 몸이 나을 것이라고 했고, 곧바로 박씨를 데리러 왔다.
그러나 내림굿을 하기 위해서는 1300만원이 필요했다. 박씨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3년 만에 가족에게 연락해 돈을 빌렸다. 이후 돈을 벌기 위해 집에서 점도 봐주기 시작했고,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방에서는 향냄새가 진동했다. 집주인은 "박씨가 드디어 미쳤다"고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박씨는 돈을 모아 신내림을 받았고, 무속인의 길을 걷게 됐다.
현재 박씨는 찾아오는 손님들의 고뇌를 덜어준다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을 돕기 위해 자신 역시 끊임없는 수행을 거쳤다고 한다. 박씨는 산과 바다를 찾아다니며 기도하고, 고기를 먹지 않는 등 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신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다시 장사를 시작해볼까 했지만, 그럴 때마다 아들이 아프고 가족의 꿈에 조상신이 나타나는 등 주위 사람들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박씨는 "신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며 내려온 이유를 찾기 위해 오랜 기간 고민했다. 죽을 고비를 겪을 정도로 고생하게 만들어 타인을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고민을 들어줄 수 있게 해 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박씨는 최근 무속 세계의 변화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신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무속인이 많은 돈을 벌고 유명해지자 젊은 청년들이 너도나도 무속인을 하겠다며 뛰어들고 있다고 한다. 과거 전통적인 무속 신앙은 물 한 그릇 떠 놓고 빌어주는 것으로 족했는데, 최근에는 자기가 몇 억짜리 굿을 뛰었다며 자랑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복채를 평균보다 비싸게 받으면서 자신이 신통한 무당이라고 홍보하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박씨는 단순히 '감'이 좋다고 해서 돈을 벌기 위해 신을 받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오늘따라 우울해서 나쁜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직감'은 누구에게나 있다. 신을 잘못 받으면 집안이 망한다. 사심을 가지고 내림굿을 받으면 돌이키기 힘들다. 수술을 잘못 받아 부작용이 생기면 고치기가 어려운 것과 같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무속인에 대해 궁금해 하는 대표적인 질문 몇 가지를 뽑아서 박씨에게 물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무속인은 신이 눈에 보이는가
"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를 무불통신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지도 않은 것이 생각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설명하다 보면 실수할 수 있다. 신의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들으려면 맑은 영이 필요하다. 음식을 가려서 먹거나 시간에 맞춰 기도에 정진하면 맑은 영을 가질 수 있다."
-무당의 일상은 어떤가
"아침에 일어나 찬물로 몸을 씻고 조상신을 위한 굿을 한다.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낼 것인지 보고드리기도 한다. 자시 기도, 인시 기도 등 시간이 되면 조상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 기도를 많이 드릴수록 도력이 높아진다. 무당은 사생활이 없다. 기도를 드리는 시간 외에는 손님들을 받아 신점을 봐주는데, 이 역시 타인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이다 보니 듣다 보면 진이 빠진다. 손님들은 본인만 잘살면 되지만, 무속인은 인연이 닿은 모든 이들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서 1인 10역, 1000역까지 하는 셈이다."
-최근 거액을 주고 점을 본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반인들은 어떤 자세로 무속 신앙을 대해야 할까
"자신의 형편에 맞지 않는 굿을 하면 그 무당이 모시는 신도 지켜보며 미쳤다고 혀를 찰 것이다. 무섭다고, 무속인이 협박한다고 굿을 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을 만나면 굿을 하라. 가끔 화장실 가야 하는 시간까지 나에게 물어보는 손님들이 있다. 짝사랑도 지나치면 사람이 미쳐버린다. 물이 넘치면 홍수로 재해가 되듯, 마음의 짐을 던다는 자세 정도로만 받아들이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