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미국 기업에 의료용 니트릴 장갑을 공급하겠다며 1020만달러(약 125억원) 규모의 사기를 친 일당을 수사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서 수입한 마스크를 납품하겠다며 국내 중소기업 업체들을 대상으로 50억원 이상을 받고도 물건을 지급하지 않아 사기죄로도 수사를 받고 있었다.
2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서경찰서는 미국 정부 등에 물건을 공급하는 미국 장갑 공급 회사와 니트릴 장갑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대금만 받아 챙긴 사기 혐의로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무역회사 A사 대표 김모(48)씨와 직원 3인 등 4인을 입건하고 사건을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다.
조선비즈가 입수한 고발장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020년 10월 19일 미국 물류회사인 W사에 1020만달러를 받고 7일 이내 니트릴 비분말성 장갑 1000만박스를 공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김씨는 대금을 받은 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장갑을 공급하지 않았다.
김씨가 W사와 맺은 전체 계약 내용은 니트릴 장갑 1억3000만박스를 8억8000만달러(1조787억400만원)에 공급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의료용 장갑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대량의 의료용 장갑을 상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며 피해 기업으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김씨는 자사 직원을 동원해 가짜 장갑 공급 제안서를 만든 뒤 대량의 니트릴 장갑 박스를 촬영한 동영상을 W사 관계자 이메일로 전송하는 등의 수법을 사용했다. 거짓으로 견적 송장도 작성해 첨부했다. 또 수시로 W사 관계자 등과 연락해 장갑 공급이 원활히 진행되고 있다고 홍보했다.
김씨는 W사 측의 대금 반환 독촉 이후에 350만달러(43억원)를 반환했지만, 여전히 670만달러(82억원) 상당의 피해는 지속되고 있다. 김씨는 대금 사용 내역을 밝히라는 요청 역시 거부하고 있다.
김씨 일당의 사기 행각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씨는 지난 2020년 중소기업 업체들을 상대로 미국에서 수입한 3M 마스크와 체온계 등을 공급하겠다며 피해자 A씨에 31억원 규모의 사기를 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도 3M 본사와의 거래 서류와 인보이스(송장), 거래 관련 이메일 등을 위조해 피해자를 속였다. 직접 미국 계좌로 송금한 내역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씨는 비슷한 수법의 마스크 사기 사건에도 연루된 바 있다. 올해 초 서울남부지법에서 1심 판결이 난 사기 사건의 피고인 양모씨는 김씨를 '수입 총판'으로 지목했다. 해당 사건 피해자들도 김씨 일당을 고소할 예정이다. 피해 금액만 도합 23억원에 달한다. 양씨는 사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해당 판결문에 따르면, 양씨와 김씨 모두 재판 과정에서 미국 내에서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미국 질병관리본부에서 의료제품에 대한 검역을 강화했고, 그로 인해 출고가 지연돼 마스크가 공항에서 발이 묶이게 됐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이들 사기단을 엄벌에 처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상황이다. 피해자 A씨는 "작년 2월에 첫 고소장을 접수한 이후 지금까지도 사기꾼 일당은 비트코인 등으로 180억원에 달하는 범죄수익을 은닉하고 버젓이 다른 사업들을 하고 있다"면서 "제발 나와 같은 피해자가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엄벌을 내려달라"고 했다.
경찰은 관련 사건에 대해 수사가 진행 중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주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