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000120) 본사를 점거한 택배노조가 이달 초부터 전국 대리점을 상대로 ‘자녀 학자금 전액 지급’을 요구하고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쟁의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리점 차원에서 들어줄 수 없는 요구사항을 넣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조선비즈가 입수한 ‘2021년 단체협약 전국공통 요구안’에 따르면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 소속 대리점을 상대로 자녀 대학 학자금을 전액 지원하고 훼손된 물품에 대해 사측이 전액 변상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협약서를 제시했다. 이외에도 ▲노동조합 인정 ▲고용안정 보장 ▲장시간 노동 근절 ▲택배노동자 처우 개선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지난달 말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 대리점에 보낸 '2021년 임금(수수료)협약 (전국공통) 요구안' 내용 중 일부./독자 제공

하지만 대리점 직원들과 비노조원 사이에선 협약서에 대리점이 들어줄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아 ‘파업 명분을 쌓기 위한 협약서’라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사업자(자영업)인 택배기사에게 자녀 대학 학자금 전액 지원이나 여름휴가 및 연차 등을 보장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훼손된 물품 보상금 전액 변상도 마찬가지다.

경기 지역 터미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CJ대한통운 직원은 “택배기사는 자영업자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고객사도 인정해주고, 직원으로서의 의무도 부여하고 있지 않다”며 “그런데 협약서를 보면 자녀 학자금을 전액 지원하는 것이나 상하차 시 책임을 모두 대리점에서 지는 것 등 마치 정규 직원에게 보장해줄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쟁의권 확보를 위해 일부러 이런 협약서를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노조원 사이에서도 택배노조의 협약서 내용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8월 극단적 선택을 한 CJ대한통운 김포 대리점주 사건과 맥을 같이 한다는 의견도 있다. 비노조원 A씨는 “노조가 제시하는 협약서는 같은 택배기사가 봐도 대리점에서 들어줄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며 “단순히 쟁의권을 위한 명분으로 대리점을 장악하려는 수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김포 대리점 소장이 노조의 압박에 못 이겨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그런 일이 또 벌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조합원들이 14일 서울시 중구 CJ대한통운 본사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뉴스1

택배노조가 파업을 확대하기 위해 비현실적인 협약서를 제시했다는 분석도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자주적 교섭에 의한 합의 여지가 없는 경우 노동쟁의를 할 수 있다. 아직 쟁의권을 갖지 못한 다른 지역 터미널과 대리점 노조가 파업에 나설 수 있도록 비현실적인 협약서를 내놨다는 설명이다. 합의가 결렬되면 다른 지역 택배노조도 파업에 나설 수 있게 된다.

한 노무사는 “택배노조가 쟁의권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러 무리한 협약서를 내놓았다고 볼 수 있다”며 “복리후생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노조원을 단결해 파괴력을 올리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력 확보를 위해 많은 사람이 참석해야 하니 여론 형성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택배노조는 지난 10일부터 서울 중구에 위치한 CJ대한통운 본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조는 이달 21일까지 CJ대한통운이 대화에 응하지 않을 시 다른 택배사로 파업 범위를 넓히겠다고 예고했다. 이달 15일부터는 파업에 참여하는 노조원들이 서울 도심에서 집회나 촛불 문화제를 진행하며 무기한 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택배노조 측은 이날 조선비즈의 취재 요청에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