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에 사는 전태현(68)씨는 6.25 참전용사인 90대 아버지의 참전명예수당 입금 계좌를 변경하려고 했다. 그런데 변경 신청을 받는 정부24 사이트에서 알뜰폰을 사용하는 아버지 명의로는 본인인증을 할 수 없다고 해서 1년 내내 보훈처와 씨름해야 했다. 보훈처에서는 정부24 사이트에서 신청이 안되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며 차라리 전씨 명의로 대리 수령하라고 대안을 내놨지만, 괜히 형제 간 갈등이 생길까 전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8일 정부와 통신업계에 따르면 정부 포털 사이트인 정부24에서는 일부 알뜰폰 통신사 가입자들의 경우 간편인증을 통한 본인 인증이 불가능한 상태다. SMS 방식의 본인 인증 서비스 대신 통신사패스(간편본인확인)가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 패스는 개인정보 입력 없이 비밀번호만으로 본인인증을 할 수 있는 이통 3사 통합 본인인증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다. 문제는 이통사들이 일부 알뜰폰 유심 사용자의 패스 가입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24의 간편인증 시스템./정부24 사이트 캡처

이 때문에 정부24 일부 이용자는 본인인증을 할 수 없다며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24는 정부의 서비스, 민원, 정책·정보를 통합·제공하는 대한민국 정부 포털 사이트다. 주민등록등본이나 건축물대장 등 각종 서류 발급과 보조금이나 수당 관련 신청서 작성 등이 전부 정부24를 통해 이뤄지는데, 본인인증이 되지 않으면 이용을 할 수가 없다.

정부24에서 본인인증이 불가능한 알뜰폰은 중장년층 가입자 비중이 높다. 대표적인 알뜰폰인 우체국 알뜰폰 가입자 중 50대 비중은 13.8%, 60대는 14%에 달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중장년층의 디지털 격차 해소에 앞장서기는 커녕 오히려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고령자의 경우 공인인증서 발급이나 네이버, 카카오톡을 이용한 본인인증 수단에도 접근이 어렵다.

전씨는 “95세인 아버지를 모시는 나도 노인인데, 아버지 명의로 어떤식으로든 정부24 사이트에서 본인 인증할 방법이 없어 답답할 노릇”이라면서 “보훈처에서도 안된다고 하고, 정부24에서도 안된다고만 하니 노인들은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통신사들에 확인해본 결과 알뜰폰 19개 회사 중 1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패스 가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 이를 통해 인증이 어려운 경우에는 패스 인증을 제외하고도 네이버, 카카오인증 등 7개의 다양한 인증 방식을 제공하고 있으니까 이를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디지털 소외계층 문제에 대해 행정편의주의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IT강국’이라는 미명 아래 디지털화의 효용을 내세우며 노년층 등 디지털 소외계층의 기본권 보호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항상 정부는 소외계층을 품고나가기엔 여력이 없다며 효용을 우선한 행정편의주의식 대응을 하고 있는데, 디지털 소외계층의 접근권이라는 기본권은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들어도 효용보다 우선시 돼야 할 가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