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사인 S사는 벤틀리 로스차일드라는 해외 금융사에서 2000만달러를 빌리는 주식담보대출 계약을 체결했다가 대출 실행 직전에 파기했다. 주식을 담보로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주식의 소유권 자체가 넘어가는 계약이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벤틀리 로스차일드는 계약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예정액 250만달러를 S사가 내라고 국제중재를 걸었지만 2년에 걸친 재판 끝에 S사가 승소했다.

벤틀리 로스차일드의 주식담보대출 계약서에 있는 독소조항을 찾아내고, 국제중재에서도 승소를 이끈 주역은 법무법인 린의 윤현상 외국변호사다. S사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던 법무법인 린이 계약 검토 단계부터 참여한 덕분에 S사는 주식 소유권을 뺏기지 않을 수 있었다.

윤현상 법무법인 린 외국변호사. /조선DB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린 사무실에서 만난 윤현상 외국변호사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2019년 6월쯤 '아메리카 2030′이라는 해외 금융사와 국내 기업을 연결해주는 대출 브로커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아메리카 2030′이라는 금융사는 미국, 홍콩,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기업들에게 주식담보대출을 제공하는 금융사였다. 2019년에는 한국에도 브로커를 두고 주식담보대출을 받으려는 기업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윤현상 외국변호사가 S사와 벤틀리 로스차일드의 분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메리카 2030′과 벤틀리 로스차일드가 사실상 하나의 회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아메리카 2030의 최고경영자(CEO)와 벤틀리 로스차일드의 CEO가 동일인물이었던 것이다. 이 두 회사는 중앙아메리카의 벨리즈라는 국가에서 대규모 금융사기에 연루된 정황이 있었고, 미국에서도 주식담보대출을 둘러싼 소송에 휘말린 전력이 있었다.

윤현상 외국변호사는 "한국기업들이 이런 불량한 외국기업들과 주식담보대출 계약을 체결했다면 손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된다"고 지적했다.

많은 중소기업이 법무팀이 없거나 로펌의 법률자문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금융사가 펼쳐 놓은 덫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윤현상 외국변호사에게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 할 지 이야기를 들었다.

-해외 금융사와 대출 계약을 체결하는 국내 기업이 가장 신경쓰고 점검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우선 주식담보대출 계약서의 조건들을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은 외국과의 주식담보거래가 한국의 주식담보대출 거래 방식과 비슷하다고 예상하겠지만, 외국 금융사는 완전히 다른 담보 제공 방식을 요구할 수 있다. 채무불이행이 있기 전까지 담보주식에 대한 소유권은 국내 기업이 갖는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또 담보주식을 가급적 국내에서 보관하도록 해야 한다. 담보주식 보관기관(Custodian)을 국내에서 금융업 인허가를 받은 금융기관으로 정하자고 요구해야 한다. 계약서에 손해배상액예정, 위약벌 조항 등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국내기업에게 책임 있는 사유로 인해 계약 위반이 된 경우에만 국내기업이 위약벌을 내도록 이들 조항의 적용 범위를 수정하는게 중요하다."

-벤틀리 로스차일드처럼 문제 있는 금융사를 미리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대출해주겠다는 외국회사에 대해 조사해봐야 한다. 구글 등을 통해 회사의 평판, 신용도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내 법규, 특히 외환신고 의무를 준수해서 대출계약을 체결하는 게 중요하다. 국내 일반기업이 외국으로부터 외화자금차입을 받거나 외국에 담보제공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외환거래신고사안이다. 무턱대고 해외로 주식을 넘겼다가 문제가 생기면 주식도 못 찾고 외환거래법 위반으로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S사처럼 계약이 체결된 이후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주식담보대출계약에서 우리 기업들은 협상력이 약한 차주의 지위다. 계약서에서 외국기업이 미리 정해놓은 중재지와 중재센터, 준거법에 그대로 동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건이 벌어지면 홈그라운드가 아닌 적진에서 중재, 재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재판이라면 2심에서 1심 판결을 다시 다툴 수 있지만, 중재의 경우 판정이 내려지면 이를 뒤집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중재는 처음부터 적극 대응해야 한다.

객관적이고 유능한 중재인을 선임해 중재판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재인 후보를 찾는 과정에서 현지의 유능하고 객관적인 중재인 후보를 추천해줄 수 있는 현지 변호사들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된다. 객관적인 중재인을 선임한 이후 본격적인 중재 절차에 들어가면 계약 체결 경위, 협상 과정, 계약 조건 내용, 증인들의 증언 등 관련된 모든 사항을 철저히 검토하고 우리에게 유리한 증거와 주장들을 가다듬어서 이를 중재판정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중재판정부가 우리의 시각, 우리의 프레임으로 사안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해외 금융사와의 분쟁에서 S사가 승소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다른 기업들이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이번 사건에서 완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계약서의 주요한 조항들을 사전에 검토해 불리한 조건들을 어느 정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담보주식 보관기관을 국내 금융기관으로 변경했고, 국내기업이 계약체결 후 30일내 주식을 담보제공하지 못하면 무조건 200만 달러를 지급하도록 하는 손해배상액 예정 조항을 '채무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로 담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에만 지급한다'고 수정했다. 만일 이런 계약 수정이 없었다면, 중재과정이 매우 어려웠을 것이고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