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소에서 다방, 다방에서 PC방, PC방에서 소셜미디어(SNS), 그리고 랜덤채팅.

성매매 수법은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에 따라 변화해 왔다. 과거 성매매는 주로 업소에서 이뤄졌지만,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다방이 성매매 장소로 탈바꿈했다. 집을 나온 미성년자들의 성매매 문제가 불거지면서 단속을 피해 다방으로 성매수자와 판매자가 모인 것이다. 성판매자들은 다방 직원인 것처럼 눈속임 한 뒤, 외부 숙박시설에서 성매매를 했다.

2000년대 들어선 PC방 붐과 함께 PC방이 다방의 역할을 대신했다. 스마트폰이 보급화된 2010년 이후로는 언제 어디서든 성매매 알선이 가능해졌다. SNS와 채팅 앱(어플리케이션)이라는 새 ‘포주’의 등장이었다.

전문가들은 성매매 정보가 넘실대고 있는 지금의 SNS는 성범죄 알선의 종착지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앞으로도 성범죄 수법은 변화를 거듭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문제 해결의 핵심은 ‘성 매수자’, 그리고 성매매에 대한 인식 변화에 있다고 했다.

◇거미줄처럼 엮인 범죄들… “더 큰 수렁 빠지기 전에 고리 끊어야”

조선비즈는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3명의 전문가를 만났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 고현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청소년보호팀장, 송봉규 한세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다. 이들은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현장에서, 정부에서, 학계에서 힘을 모으고 있었다.

20년 넘게 미성년자 성매매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는 조진경 대표는 성범죄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했다. 성매매 피해자들은 가정폭력, 아동학대를 당하다 SNS 채팅, 온라인 그루밍, 사진 유포 협박, 성착취, 성매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조 대표는 “가정폭력 때문에 부모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한 아이들이 인터넷에 빠져 온라인 그루밍 피해를 입고, 성착취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고리를 제때 끊어주지 않으면 성매매로 빠지는 건 놀랍지 않은 결과다. 몇 년 후 성인이 된 후에는 법적으로도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 /김지호 기자

조 대표는 “미성년 성매매는 단순히 불량 청소년의 일탈 정도로 볼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초등학생 A양이 전체이용가 게임에서 “같이 오목 둘 친구를 구한다”며 채팅을 올렸다가 이를 보고 접근한 남성에게 온라인 그루밍 피해를 당해 신체 사진 촬영에 응한 일이 있었다. 다행히 부모의 신고로 더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지만, 어른의 개입이 없었다면 이를 빌미로 한 또다른 촬영 요구와 그 이상의 협박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성매매는 도박 등 다른 조직범죄와도 연결돼 있었다. 송봉규 교수가 웹사이트 ‘배너광고’를 중심으로 불법·유해 웹사이트간의 연결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음란물 사이트와 불법 웹툰 사이트, 불법 영화·드라마 사이트, 불법 도박 사이트, 불법 직업(성매매) 알선 사이트 등이 서로 얽혀 있었다.

송 교수는 “페이지 뷰가 높은 불법 콘텐츠 사이트에 배너광고를 노출시킨 뒤 방문자를 또 다른 조직범죄 사이트로 유인하는 식”이라며 “주로 음란물, 불법 웹툰, 불법 영화·드라마 사이트가 미끼 역할을 했고, 종착지는 성매매 알선과 도박 사이트였다”고 했다.

◇“90% 감염자 아닌 10% 감염원 파고들어야 한다”

인터넷에 올라온 범죄 정보를 선제적으로 찾아내 유통을 막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성매매 정보는 SNS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이용하는 게임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28일 오전 서울 양천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고현철 청소년보호팀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인터넷상 불법 유해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창과 방패의 싸움’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고현철 팀장은 “많은 유해사이트가 국내 규제를 피하기 위해 해외 서버를 이용한다”며 “이럴 경우 국내 접속을 차단하고 있는데, 사이트 운영자는 도메인을 계속해서 바꿔나가면서 규제를 피해간다. 또 해외 사업자를 통해 도메인을 등록하면 국내 기관으로서는 강력한 대처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미성년자 성매매의 장으로 지목된 랜덤채팅도 규제에 어려움이 있다. 고 팀장은 “방송과 달리 인터넷 등 통신은 최소 규제가 원칙”이라며 “채팅 앱 자체가 불법적인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고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인 데다 개인간의 사적 대화를 감청하는 것은 현행법에 위반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방심위는 채팅방 제목이나 이용자 프로필 등을 통해 유해 정보를 유통한 이용자에 대해 이용해지 등 시정요구를 하고 있다.

앞서 조진경 대표와 255개의 연대 기관들은 지난 2016년, 10대 성매매의 장이 됐던 7개의 랜덤채팅 앱을 상대로 고발장을 냈다. 2년 여 만에 난 최종심 선고 결과는 ‘기각’이었다. 이유는 이들 앱을 처벌할 관계 법령이 없다는 것이었다.

인력 문제도 있다. 고 팀장은 “매주 심의에 상정되는 건만 해도 1000건이 넘는다. 상정되지 않는 건수까지 합치면 1년에 8만건 정도를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업무를 처리하는 인원은 7명이 전부였다. 여기다 매일같이 걸려오는 민원 전화 응대 역시 이들 몫이라고 고 팀장은 말했다.

그렇다고 디지털 성범죄가 확산하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송 교수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대안으로 ‘9대1 법칙’을 들었다. 전체 범죄자 가운데 90%가 저지르는 범죄 사건의 비율은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10%의 범죄자가 90%의 범죄를 저지른다는 말이다. 공기 중에 감염병 바이러스가 퍼지면 순식간에 번져 나가듯, 유해 정보 역시 인터넷 전반을 순식간에 오염시키기 때문에 90%의 ‘감염자’보다 10%의 ‘감염원’을 파고 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의 조주빈, 문형욱 등과 같은 ‘감염원’들은 기존의 검열 시스템으로는 절대 잡히지 않는다. 유인에 유인을 거듭하면서 단속을 피해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기 때문”이라며 “’마구잡이’식으로 모든 정보를 심의하고 수사하기보다, 위장수사 등을 통해 10%의 감염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위장수사의 법적 근거를 담은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이 지난 9월 24일 시행되면서 경찰은 성범죄 수사에 위장수사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29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한 카페에서 송봉규 한세대 산업보안학과 교수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성매매는 노동착취, 현대판 노예제… 자발적이든 아니든 피해자”

여러 SNS를 타고 옮겨다니는 성매매를 줄이기 위한 궁극적 해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수요를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무리 유통망을 차단해도 수요가 있는 한 공급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 팀장은 “미성년자의 경우 유인책에 빠져 성매매를 시작할 위험이 큰데, 이 책임을 아이들에게 전가하고 비난하는 것은 성인으로서 무책임한 일”이라며 “아이들을 보호하고 올바른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성매매를 ‘불법 착취’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송 교수는 “성매매는 위법행위를 통한 노동착취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아동과 청소년을 유인해 음란물을 찍게 하는 행위 역시 아동·청소년 착취 행위에 해당한다”며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불법으로 하는 노동착취의 피해자는 보호하고 지원하자는 것이 세계적인 패러다임이다. 성매매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었든 아니든 노동 착취의 피해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은 지난 2015년 이같은 착취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한 일환으로 ‘현대판 노예법(Modern Slavery Act)’을 시행했다.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강제 노동을 하게 하거나, 빚을 지게 한 뒤 착취하는 행위를 ‘노예제’로 간주하고 이들의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성매매 행위 역시 이에 포함됐다.

조 대표도 “성매매는 대등한 지위간의 계약이 아닌 명백한 착취 행위”라면서 “착취 대상은 여자 아이뿐만 아니라 남자 아이, 성인 여성, 성인 남성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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