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다운

법원의 만성적 문제인 인력난으로 '번아웃'을 호소하거나 과로로 사망하는 법관도 잇따라 나오면서 판사 증원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관 부족 문제는 '졸속 재판'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7일 법원에 따르면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 인력난 심화에 대한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상황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10년 차 이상 중년의 변호사가 연봉을 대폭 깎고, 서울을 떠나 지방법원에서 수년간 머물러야 하는 등의 현실적 문제를 떠안고 법관이 되려 할지 의문"이라며 "행정처가 경력 5년을 고집하는 것은 몸값이 더 오르기 전 능력 있는 법조인을 '입도선매'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변호사가 경력판사가 될 수 있는 최소 경력요건을 5년으로 고정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부결됐다. 현행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법관의 최소 경력요건은 올해까지 5년이지만 내년부터는 7년, 2026년부터는 10년으로 늘어난다.

법원 내부게시판 코트넷에서도 개정안을 두고 최근 '갑론을박'이 이어진 가운데 자격요건 자체를 두는 것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왔다.

유정우 울산지법 판사는 "현재 법원은 물론이고 공무원, 행정조직, 공공기관까지 포함해 나이 제한도 사라졌고 이른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는 세상"이라며 "반대로 생각하면 필요한 법조경력을 10년으로 고정시켜 놓는 것이 자격요건을 강화한 것에 해당하고, 이것이 더욱 관료주의적 요소를 더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법원행정처가 국회에 제출한 법조 경력자 법관 임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판사직 지원자 가운데 7년 이상~10년 미만은 158명(30.2%)으로 10년 이상 경력자(43명, 8.2%) 규모를 상회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경력자들의 지원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10년 경력 이상의 법조인을 법관으로 뽑을 경우, 특정 방향성을 가진 인사들이 몰리거나 사건 수임 등의 부담에서 벗어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좇아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 양질의 법관을 선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도 개정안 부결에 반박하는 차원의 자료를 내기도 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23일 '각국 법관의 업무량 비교와 우리나라 법관의 과로 현황' 자료를 공개하며 법관 부족으로 재판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을 강조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법관 1인의 연간 담당 사건 수는 464.07건이다. 이는 한국과 사법 시스템이 비슷한 독일의 5.2배(89.6건), 일본의 3.1배(151.8건), 프랑스의 2.4배(196.5건)에 달한다. 2019년 기준 한국의 법관 수는 정원 2966명이다. 같은 해 민·형사 사건 수는 137만6438건으로 판사 1명당 하루에 1.27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업무 가중으로 쓰러지는 판사들도 있다. 2012년 울산지법의 한 부장판사를 시작으로 지난해 서울서부지법의 부장판사까지 과로사로 추정돼 세상을 떠난 판사가 5명이다.

법조계에선 법관 인력 부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관 한 명이 담당하는 사건이 많아질수록 사건을 상세히 들여다볼 수 없는데다 사건 지체 현상도 심화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될 수 있는 것이다.

한 현직 판사는 "사법 개혁의 취지가 국민에게 양질의 재판을 받게 하자는 목적 아니었나"라면서 "사건 수는 늘어나고, 법관은 고령화되고 있어 신속하고 정확하게 재판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