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종아리가 자주 부어 서울 강남역 인근 흉부외과를 찾은 김모(51)씨는 병원 상담실장과 마주앉자마자 ‘실손보험에 가입돼 있느냐’는 질문부터 들었다. 보험이 있다고 답하자 상담실장은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며 수술동의서를 내밀었다. 진료가 끝나자마자 수술을 권유받은 김씨는 큰 병인가 싶어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너무 비싼 비용 탓에 결국 수술 결정을 미룬 채 병원을 나섰다.

김씨는 의심스러운 마음에 며칠 후 다른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이 병원에서 하지정맥류가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요즘도 피곤하면 다리가 붓긴 하지만 별다른 불편함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정맥류라고 '가짜 진료'를 한 뒤 환자가 수술을 거절하자 한 흉부외과는 이같은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보내며 수술을 권유했다. /독자 제공

일부 흉부외과에서 실손보험금을 노리고 하지정맥류 허위 진단을 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초음파 검사 결과 등을 조작해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환자에게 하지정맥류 진단을 내린 뒤 고가의 비급여 수술을 받게 하는 것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실손보험이 있는 환자의 경우 수술비가 터무니없이 비싸도 거부감이 덜하다”며 “이같은 심리를 악용한 사기 수법으로 의료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말했다.

◇실손보험 가입자 허위진단 후 1000만원짜리 수술 권하는 병원들

김씨와 같은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원규(54)씨는 최근 다리에 쥐가 자주 나 한 병원을 찾았다. 진료를 본 의사는 “종아리에 혈액이 올라왔다 내려왔다 해야 하는데 그 정도가 보통 사람의 절반도 안 된다”고 진단했고 “실손보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한씨가 “있다”고 답하자 “950만원짜리 비급여 베나실 시술이 최신형”이라며 당일 수술을 권했다.

한씨는 “생각해보겠다”며 집으로 돌아와 가까운 흉부외과에서 다시 진료를 받았고 초음파 검사 결과 정맥류가 전혀 없다는 소견을 들었다. 한씨는 사흘간 일을 쉬면서 처방받은 혈액순환 약을 먹자 증상은 말끔히 나았다.

수술비 1400만원이 청구된 서울 강남의 한 하지정맥류 전문병원 영수증. /독자 제공

운전 중 다리가 저리고 무거운 느낌을 호소하던 김모(42)씨도 한 흉부외과에서 1시간여의 긴 진료 끝에 하지정맥류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김씨에게 “이른 시일 내에 수술해야 한다”며 400만원짜리 비급여 시술을 권했다. 그러나 수술비와 검사비가 비싸다고 생각한 김씨는 다른 병원을 찾았고 정상 판정을 받았다. 병원 측은 하지정맥류가 아니더라도 가끔 다리가 저리고 무거울 수 있다며 김씨를 돌려보냈다.

병원의 무분별한 시술로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례도 있었다. 김순자(74)씨는 한 흉부외과에서 하지정맥류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높은 비용이 영 꺼림칙해 수술 대신 약만 처방받았다. 그러나 약을 먹어도 종아리가 저렸다. 병원으로부터 ‘수술하지 않으면 합병증이 올 수 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매일같이 오자 두려움이 든 김씨는 결국 수술을 택했다.

하지만 당초 300만원이라고 안내받은 것과 달리 영수증에는 470만원이 찍혀있었고, 수술 후에도 다리 저림은 낫지를 않았다. 김씨가 병원에 항의하자 병원 측은 “허리가 안 좋아서 종아리가 저린 것이다” “약을 제대로 안 먹어서 그렇다” “베나실 대신 레이저 시술을 받아서 그렇다” 등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저림에 통증까지 겹치자 김씨는 다른 병원을 찾아봤지만, 병원에서는 이미 김씨가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은 터라 하지정맥류가 통증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도 다리가 왜 아픈지 모르고 절뚝거리면서 걸어다닌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초음파 검사 결과 조작해 가짜 진료… “의료계는 ‘그러려니’”

하지정맥류 진료 사기는 의료계에서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손보험 가입자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환자가 “큰 돈을 잃어 억울하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일도 없다. 불필요하게 청구된 금액이라도 보험사 돈으로 지급되는 것이니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한 정형외과 의사 A씨는 “베나실 등 비급여 항목은 병원 입장에서 ‘부르는 게 값’이다. 그래서 가짜 진료 하는 병원들은 환자한테 실손보험 들었는지부터 묻는다”며 “환자들도 찜찜하긴 해도 자기 돈 드는 게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하지정맥류 초음파 검사 사진. 검사기로 종아리를 눌렀을 때 위 사진처럼 흰 선 아래로 브이(V)자 파형이 한 차례 그려지면 정상이고, 아래 사진처럼 V자 파형 이후 흰 선 위로 치솟은 형태의 파형이 1초 이상 지속되면 하지정맥류로 진단된다. (사진은 2.3초 지속) 한 피해자는 A씨 병원에서 위 사진과 같이 정상 판정을 받았지만 앞서 진료를 받은 다른 병원은 하지정맥류로 판단, 고가의 비급여 수술을 권유했다. /독자 제공

A씨에 따르면 가짜 진단서를 끊기는 생각보다 쉬웠다. 하지정맥류는 초음파 검사를 통해 진단하는데 역류성 파형이 1초 이상 나오면 정맥류 진단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병원은 촬영 과정에서 일부러 왜곡을 줘 억지로 파형을 만들어낸다고 A씨는 설명했다.

A씨는 “찍는 과정에서 손을 조금만 흔들어도 파형이 생긴다. 또는 종아리를 쥐어짜고 누르면서 비슷한 파형을 만들기도 한다. 그럼 실제 진단 기준과 똑같지 않아도 엇비슷한 모양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3~5분이면 초음파 검사가 끝나는데 20~30분씩 검사하는 곳이 있다. 정맥류가 안 찾아지니까 억지로 만들어내서 정맥류로 진단하고 수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단 수술을 하고 나면 사후 검증이 안 된다”며 “혈관이 원래 없었던 건지, 수술로 없어진 건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 하지정맥류 환자 수는 2015년 15만1239명에서 2020년 21만5947명으로 급증했다. 환자가 늘어난 것도 있지만 2017년 미용 목적의 베나실 시술 환자도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 범위가 확장되면서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A씨는 “대부분의 논문이 베나실은 다른 시술들과 효과가 비슷하다고 하는데 베나실이 비급여 시술 중에서도 가장 비싸기 때문에 권유하는 병원이 많다”며 “양심적인 병원에서는 굳이 베나실을 하지 않고 레이저나 고주파 시술만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계에선 다들 짐작은 하고 있지만 ‘그러려니’ 한다. 가짜 진료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오래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