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정부시 한 아파트에 사는 A씨는 지난 4월 산책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 마당에 동물원이 들어선 것이다. A씨는 “어린이집 마당에 대형 거북이가 돌아다니고 토끼, 기니피그 등이 보였다”며 “아이들이 신기한지 동물들을 만지고 들고 다니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은 즐거워 보였지만, 아이들이 흥분해 소리를 지르고 작은 동물들을 만지고 끌어안으니 동물들은 매우 불편해 보였다”고 했다.

이동식 동물원 업체 실내사육장에 사자 한 마리가 누워있다. 해당 업체는 지난해 폐업했고 사자도 폐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아이들이 동물원 방문 등 야외활동을 하기 어려워지자 학부모와 유치원 등이 이른바 ‘이동식 동물원’으로 현장 체험을 대신하고 있다. 이동식 동물원은 야생동물 만지기, 먹이 주기, 기념사진 촬영 등 관람객이 동물과 접촉할 기회를 제공하는 체험형 동물원이다. 작은 동물을 취급하는 이동식 동물원은 주로 어린이집, 학교, 백화점·대형마트 문화센터, 행사장 등에서 운영된다.

실제로 소셜미디어(SNS)에 ‘이동식 동물원’을 검색해보면 수백개의 체험 후기를 발견할 수 있다. 유치원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A씨는 “차 한 대가 어린이집 앞에 오더니 동물원을 뚝딱뚝딱 설치했다’라며 ‘토끼 먹이 주기, 팔에 앵무새 얹기 등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회사원 B씨는 “사내 도서관에서 구렁이, 햄스터 등이 오는 이동식 동물원 행사가 열렸는데, 사전예약까지 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몰렸다”며 “5분 만에 스무 명 넘게 줄을 서더라”라고 했다.

이동식 동물원 체험에서 스컹크를 만지는 아이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2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국의 이동식 동물원은 약 34개다. 이들 동물원은 실내 동물원이나 소규모 사육 시설 등에서 사육하다가 행사 요청이 들어오면 동물들을 데리고 현장에 나가는 식으로 운영된다.

문제는 사육 환경이다. 어웨어에 따르면 대형 사육장이 필요한 사자나 유인원을 야외방사장 없이 실내에서만 기르고, 미니피그나 라쿤 등 작은 동물들 역시 좁은 새장이나 반려동물용 이동장 등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파충류의 경우 온도, 습도, 자외선 등 세심한 사육환경을 조성해야 함에도 이동이 편리한 아크릴 상자 등에 사육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웨어가 조사한 11개 업체 중 2개 업체는 일반 주거시설에서 동물들을 사육하고 있었다. 사업장이 일반 주거지로 등록된 경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동물 관리 상태를 점검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동식 동물원은 동물을 ‘오락물’로 여기게 해 자칫 그릇된 가치관을 갖게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이동식 동물원은 어린아이들이 동물을 오락물로 생각하고 대상화하게 하는 부적절한 교육방식”이라며 “동물 체험 때문에 동물의 체력이 저하돼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은 자신이 생명을 멋대로 만진 결과는 알지 못한 채 즐거움으로만 소비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철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돼지의 모습.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새장에서 사육되는 라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이 제공

감염병 문제도 지적됐다. 전문가들은 동물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사육환경과 관람객과의 접촉, 잦은 운송 과정에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동물의 면역력을 약화해 병원체가 배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가 동물을 만지거나 먹이를 준 손을 바로 입으로 가져가는 경우 동물에 묻은 타액, 비말, 분비물 등을 통해 직접 병원체에 감염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이동식 동물원은 어디서 어떻게 사육되는지도 모르고, 이동하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불투명하다”며 “코로나와 같이 인수공통감염질병이 많은데, 비위생적인 사육 환경에서 자란 동물은 사람에게 질병을 옮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비판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동식 동물원 겸 실내 동물원을 운영하는 C씨는 “극단적인 사례들도 있지만, 많은 이동식 동물원 업체 등은 수의 협약된 동물병원의 관리를 받으며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등 늘 관리를 받고 있다”며 “동물을 좋아하는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에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법 개정안에 따르면 동물의 종별 서식환경 기준을 설정하는 등 동물원·수족관의 허가 기준을 강화하고 동물 이동 전시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법이 시행되면 이동식 동물원은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