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해외여행 길이 막히자 '가심(心)비 소비'를 통한 보복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2030 청년세대 사이에서도 이러한 가심비 소비 열풍이 이어지고 있는데, 동시에 박탈감을 호소하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가심비' 소비란 가성비 소비의 반댓말로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를 뜻한다. 가성비가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과 객관적인 성능에 초점을 맞춘다면, 가심비는 소비를 통해 얻는 만족감과 심리적 안정감 등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면 인당 1만~2만원의 가성비 좋은 고깃집 대신 비싸더라도 인당 10만원 이상의 근사한 코스 요리를 택하며 스스로 만족감과 행복을 얻는 것이다. 평소 사고 싶었던 명품 가방을 위해 월급보다 많은 금액을 지불하거나 야근하고 귀가하는 길에 평소와 다르게 택시를 타는 것도 가심비 소비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가심비 소비를 이끄는 건 '2030′ 청년층이다. 소셜미디어(SNS)에 '오마카세' '파인다이닝' '플렉스' 1박에 40만원 이상 하는 고급 호텔 이름 등의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청년층이 올린 게시물이 대부분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과시하는 청년층의 트렌드에 가심비 소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직장인 손용주(33)씨는 "부담스러운 가격이긴 하지만 내가 번 돈을 온전히 내 만족을 위해서 쓰는 게 좋다. 식사하는 동안 대접 받는다는 느낌도 좋아서 오마카세를 혼자서도 종종 이용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가심비 소비 문화가 기업의 마케팅에 활용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청년세대가 선호하는 연예인, 인플루언서(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SNS 유명인)에게 고액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협찬하면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를 광고하는 식이다. 청년들이 이들을 따라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고, 이를 다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시하게 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기업들은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만 하다는 뜻의 신조어)'한지를 중시하는 청년세대의 성향을 이용해 SNS 광고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유명인들의 SNS 사진을 보고 홀린듯이 따라 사는 소비자들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생 김수민(26)씨는 "최근 명품 소비의 중심축이 2030 세대로 변하고 있는데 SNS 영향이 큰 것 같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이 명품 소비를 사진으로 노출시키면, 그들을 팔로우하고 있는 MZ 세대들이 본인도 구매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아 너도나도 명품을 구입하는 것 같다"면서 "나도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을 보고 명품을 따라 사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가심비 소비 문화가 청년층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이다.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와 겹치면서 일부 청년들이 느끼는 우울감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6일 발표한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6월 기준 20대와 30대의 우울 평균점수와 우울 위험군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최근 들어 20대의 우울도가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30대의 경우 우울 평균점수가 작년 3월 이후 꾸준히 높게 나타났지만, 20대는 작년 3월에는 연령대별 점수가 가장 낮았으나 최근에 급격하게 증가했다. '자살 생각 비율' 역시 20대가 17.5%로 전체 평균(12.4%)을 웃돌며 가장 높았고 30대가 14.7%로 그 뒤를 이었다.
취업준비생 A(27)씨는 "주위를 보면 나 빼고 다들 한 번쯤은 고가의 오마카세 식당, 미슐랭 식당을 가 본 것 같다"면서 "나는 예약 한 번 하려고 해도 가장 저렴한 곳부터 찾는데 주위 친구들이 모두 SNS에 오마카세 식당에 간 것을 올리면 '혼자 유행에 뒤쳐지고 있나'하는 박탈감도 든다"고 말했다.
직장인 B(32)씨는 "나는 명품을 거의 구매하지 않는데 맨날 오픈런 기사가 나온다. 거리에 차들도 보면 30% 이상이 BMW, 벤츠 같은 외제차인 것 같다"고 했다. 직장인 권모(28)씨도 "직장 동료나 학교 동창들이 가끔씩 '나를 위한 소비'라면서 돈을 수백만원씩 쓰는데, '나만 이렇게 악착같이 저축하고 있나' 하는 박탈감이 종종 들어 SNS를 끊었다"고 했다.
이성직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상대적 박탈감을 심하게 만드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크다. '영끌', 가심비 소비 등이 다 포함된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밖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야 될 2030세대가 코로나로 인해 활동이 막히게 되면서 박탈감과 우울함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광고를 자제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비교적 값싸게 광고를 하고, 이 중에는 터무니없는 과대 광고도 많다"며 "여러 부작용도 지적되는 만큼, 기업들도 SNS를 통한 무분별한 협찬이나 광고 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