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을 대상으로 한 폭행·폭언과 부당해고 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을 향한 '갑질'은 현재 진행형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경비원 근무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 등을 입법예고했지만, 전문가들은 주민들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마저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 지적한다.

21일 주택관리공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접수된 아파트 경비관리원에 대한 폭언·폭행 민원 건수는 2369건이다. 주취 폭언·폭행이 1030건으로 56.5%를 차지했고, 흉기를 들고 협박한 경우는 22건으로 집계됐다.

21일 오후 3시 10분쯤 서울 노원구 상계동 한 아파트 경비원의 모습. /송복규 기자

경비원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아파트 주민의 폭언·폭행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나왔다. 특히 지난해 4월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서 경비관리원이 40대 남성 주민에게 12분 동안 폭행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본격화됐다.

그러나 경비원을 대상으로 한 갑질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선 60대 남성이 경비관리원을 집으로 불러 둔기로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8일에도 전라북도 익산에서 근무 중 졸았다며 경비원에게 주먹을 휘두른 50대 입주민이 경찰에 붙잡혔다.

조선비즈가 만난 경비원들도 갑질은 여전하다고 입을 모았다. 동대문구 휘경동 소재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김모(76)씨는 "주민들이 짜증 내는 일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라며 "하루의 불만을 우리한테 푸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인터뷰 자체도 주민들이 무서워 못하겠다"며 지나가는 주민들 눈치를 살폈다.

서울 영등포구 아파트에서 경비 근무를 하는 차모(74)씨도 "주민이 언성을 높이는 일은 자주 발생한다"며 "주민들에게 겪는 부당한 일을 다 말하자면 책으로 써도 모자라다"고 했다. 그는 "늙은 사람들이 무슨 힘이 있겠냐"며 "주민에게 욕설을 들어도 항의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경비원이 갑질을 신고하는 등 적절한 대응이 힘든 이유는 고용이 불안해서다. 주민들이 경비원들을 관리하는 용역업체를 압박하면 용역업체는 경비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4월 29일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중계그린아파트에서는 경비원 44명 중 16명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해고를 통보받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관리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기존 경비원들을 고용 승계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노원구가 나서 중재에 나섰지만 결국 복직된 경비원은 6명뿐이었다.

이용섭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동 대표가 용역업체에 경비원을 해고하지 않으면 업체를 바꾸겠다고 협박해 경비관리원들이 해고된 사례가 있다"며 "경비관리원을 대상으로 일종의 갑질을 부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비관리원이 대부분 70~80대로 연로해 불만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 힘들다"며 "1~3개월 단위로 단기 근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아 고용상태도 매우 불안정하다"고 했다.

21일 오후 3시 서울 노원구 상계동 한 아파트 경비실 내부 모습. /송복규 기자

국토교통부는 경비원 근무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오는 10월 21일부터 경비원 업무는 경비 업무와 환경관리를 비롯한 재활용품 분리배출 정리·단속, 위험·도난 발생 방지 목적의 주차 관리와 택배 물품 보관 등으로 한정된다. 이외 업무를 경비원에게 시킨 아파트 주민은 10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개정안이 오히려 경비원과 주민들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한다. 법으로 강제하기보단 주민들의 인식 전환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경비관리원의 업무를 법제화하면 주민들의 원성만 높아질 수 있다"며 "결국 경비관리원과 주민들의 마찰이 잦아지면서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 교수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자치위원회를 결성해 경비노동자들과 소통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