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11시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현대코아 상가 버스정류장. 10명 남짓한 시민들 앞에는 길이 약 80m, 높이 약 1.2m의 철제 울타리가 세워져 있었다. 100m가량 되는 통행로를 이 울타리가 절반으로 가르고 있는 탓에 정류장에 가려면 울타리를 돌아서 가거나 넘어가야 했다.

울타리를 빙 둘러 돌아왔다는 이모(77)씨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버스가 한 번에 여러 대 정차하면 특히 힘들다. 길도 좁아서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인파를 뚫지 못해 버스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2일 오전 동대문구청에서 시행한 거리 가게 허가제 일환으로 설치한 노점 앞을 상인들이 설치한 길이 약 80m, 높이 약 1.2m의 철제울타리가 가로막고있다. /방재혁 기자

◇노점가게 합법화하자… 인도 한가운데 우뚝 솟은 철제 울타리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역 인근 노점상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구청이 노점 가게를 허가하자, 이에 반발한 인근 상가 상인과 주민들이 노점을 막기 위해 가벽과 철제 울타리 등을 설치했다. 이 때문에 애꿎은 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동대문구는 무분별하게 늘어선 노점이 보행자 통행을 방해하고 안전문제와 위생문제 등이 제기되자 노점상 제도권 수용을 위해 ‘거리가게 허가제’를 시행했다. 이후 이곳 인도에는 지난달 28일 노점 판매대 8개가 들어섰다. 그러자 인근 상가인 현대코아 측은 자신들의 사유지에 노점이 들어선다며 쇠파이프와 마대자루를 사용해 노점 판매대 바로 앞에 2m 높이의 가벽을 세웠다. 이에 동대문구는 “높이 2m이상의 가벽은 건축 허가 없이는 설치할 수 없는 불법 구조물”이라며 철거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현대코아 측은 구청의 철거명령을 피하기 위해 가벽을 철거하고 지난 4월 길이 80m, 높이 1.2m가량의 철제 울타리를 세웠다. 이곳 인도는 폭 2m가량으로, 노점 판매대와 울타리가 동시에 세워진 20m 구간은 통행로 폭이 1m도 채 되지 않았다. 맞은 편에서 사람이 오면 뒤로 돌아가거나 몸을 옆으로 최대한 밀착해야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인근 버스 정류장을 이용하려면 이 구간을 통과해야 하는 탓에 시민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버스가 오는 급박한 상황인데 허리 높이가 넘는 울타리가 가로막고 있으니 넘어가려다 다치거나 돌아가느라 버스를 놓치기 일쑤”라고 입을 모았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 정모(81)씨는 “버스를 타려고 노점 앞을 지날 때 반대편에서 사람이 오면 2명이 동시에 통과할 수 없어 불편하다. 어제는 울타리를 뛰어넘는 사람도 봤는데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고 말했다. 근처에서 김치를 파는 노점상 김모(62)씨도 ”어제(1일)도 버스가 도착했는데 어떤 사람이 돌아가면 늦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울타리를 넘어가다가 다친 걸 봤다. 절뚝거리면서 버스에 올라타더라”라고 말했다.

◇구청 “노점상, 제도권으로 수용해야” vs 상인·주민 “허가제 대신 완전 철거”

구청은 무허가 노점으로 인한 문제들이 이어지는 만큼 이를 제도권으로 수용해 구청의 관리·감독을 받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안전·위생 사각지대에 놓였던 노점 상인들이 구청에 신원을 등록해 허가를 받으면 구청에서 매대를 제공하고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인들은 무허가 노점상이 아닌 ‘거리 가게 상인’으로서 도로점용로와 대부료를 내고 합법적인 영업이 가능하다. 현재 동대문구에는 전체 427개의 노점 중 154개가 허가를 받아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코아 상인들을 포함한 청량리역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노점상들을 수용할 것이 아니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코아 측은 “미관상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유지에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 뿐”이라며 “버스정류장 이용객들의 불편은 인지하고 있고, 구청과 합의해 중간 출입구를 만들 예정이지만, 노점상 앞은 출입구를 만들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동대문구 홈페이지 민원게시판에는 거리허가제를 반대하고 노점 철거를 요청하는 내용의 게시글이 지난 한 달동안 총 3598개 올라왔고, 지난 1일에는 하루 동안 150개가 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2일 오후 동대문구청 홈페이지 '구청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에 올라온 노점철거를 요구하는 게시글들. /방재혁 기자

노점상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근처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김모(59)씨는 “여기서 몇십년을 장사했는데 이제 와서 장사를 못하게 하면 노점상인들은 생계유지가 어렵다”며 “구청에서 시행하는 허가제에 동참하기로 했고, 현대코아 상가 측에서 요구하는 대로 점포도 줄였는데 무조건 장사를 못하게 막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협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버스정류장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을 현대코아 측도 인지하고 있는 만큼 정식으로 합의서를 작성해 철제 울타리를 철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