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클럽에 자주 왔는데 한 번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걸린 적 없다. 백신은 아직 안 맞았다.”

지난 30일 오후 9시 30분쯤 서울 마포구 홍대 클럽 거리에서 만난 김용현(가명·23)씨는 담배를 물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가 찾은 클럽은 ‘델타형’ 변이 바이러스 확진자가 다녀간 곳으로 방역당국이 방문자들의 코로나 검사를 요청한 곳 가운데 한 곳이었다. 그는 “확진자가 다녀간지 몰랐다”며 “(홍대에) 여전히 사람 많은걸 보면 그다지 걱정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30일 오후 10시쯤 서울 마포구 홍대 클럽거리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방재혁 기자

수도권 소재 외국인 강사 6명이 홍대 음식점에서 모임을 가진 뒤 관련 확진자가 200명을 넘어섰다. 특히 이들 가운데 델타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되면서 수도권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이들이 다녀간 홍대 일대엔 거리두기를 잊은 듯한 모습이었다.

◇델타 변이 비웃듯… 인파 북적이는 ‘홍대 클럽 거리’

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경기도 성남시와 의정부시, 부천시, 고양시 어학원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강사 6명이 지난달 19일 홍대의 한 음식점에 방문한 뒤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들이 소속된 어학원 6곳 모두 집단감염이 번졌고 이들이 방문한 홍대 소재 클럽 등 8곳에서도 다수의 확진자가 나왔다. 전날 0시 기준 관련 확진자는 총 213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나와 문을 닫은 서울 마포구 홍대 한 살사클럽. /방재혁 기자

특히 이들 가운데 델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도 확인됐는데, 델타 바이러스는 현존하는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가운데 가장 전파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중대본은 지난 29일 “16~28일 마포구 홍대 라밤바·젠바·도깨비클럽·FF클럽·어썸·서울펍·코너펍·마콘도bar 방문자는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아 달라”는 내용의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외국인 강사들이 방문한 것으로 확인된 이 시설들은 유흥시설이 아닌 일반음식점이나 주점으로 신고돼 집합금지 조치를 피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오후 8시쯤, 확진된 외국인 강사들이 다녀갔다던 홍대 클럽 등 8곳을 방문해보니, 이 중 6곳은 문이 굳게 닫힌 채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다. 반면 나머지 2곳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코로나 이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출입구 인근에는 흡연자 10명가량이 마스크를 벗은 채 줄지어 서 있었고, 좁은 골목은 흡연자와 인근 주점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붐벼 거리두기가 실종된 모습이었다.

오후 10시쯤 한 주점에서 나오던 장주영(22)씨는 “여기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뉴스는 봤다. 조금 불안하긴 하다”면서도 “친구들이 부르길래 놀러 나왔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 여부를 묻자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20대는 아직 맞는거 아니라는 이야기 들어서 아직 못 맞았다”고 말했다.

미접종자인 20대 정모씨도 “확진자가 왔다 갔다는 건 뉴스로 봐서 알고 있다”면서도 “너무 오랫동안 못 놀아서 못 견디고 나왔다. 영업시간이 끝나서 나왔는데 친구네 자취방에 가서 술을 더 마시려고 한다”고 했다.

30일 오후 9시쯤 서울 마포구 홍대 길거리에 시민들이 서 있는 모습. /방재혁 기자

◇ “야외인데 어때”… 인근 연남동도 ‘노상 술판’으로 몸살

같은 시각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이어지는 마포구 연남동 일대도 저녁을 즐기기 위해 나온 인파로 북적였다. 특히 오후 9시 30분쯤 영업제한 시간이 가까워져오자 거리엔 놀이공원 폐장시간을 방불케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가게에 있던 사람들이 음식점과 주점에서 거리로 일제히 쏟아져 나오면서 홍대입구역으로 향하는 하나의 행렬이 만들어졌다.

10시가 지나자 ‘연트럴파크’로 불리는 이곳 공원에는 길거리 음식과 캔 맥주를 손에 든 사람들로 가득 찼다. 2m 이상 거리두기 조치로 몇 개 남지 않은 공원 벤치엔 ‘턱스크’를 한 채 음주를 즐기는 시민들이 빼곡히 앉아있었다. 이들 머리 위로 걸려있던 ‘마스크 착용 의무화’ 현수막이 무색했다.

30일 오후 10시 30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인근 공원에 인파가 북적이고 있다. /김효선 기자

홍대 인근에 일주일에 두어번은 온다는 직장인 이소희(29)씨는 “이 근처에서 변이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왔다고는 하는데 거긴 클럽이고 여긴 아니지 않느냐”며 “주로 가는 일반 음식점 같은 데서는 잘 감염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 공원 벤치에서 지인과 캔맥주를 마시던 남성 이모(34)씨는 “얀센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코로나 걱정은 안 된다”며 “어차피 야외인데 괜찮은 것 아니냐. 클럽도 아닌데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행과 함께 편의점 테이블에서 컵라면과 맥주를 즐기던 박혜영(가명·21)씨도 “홍대에 자주 놀러 온다”며 “공원 벤치도 나름대로 거리두기가 지켜지고 있고, 야외인데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국 미뤄진 거리두기 개편… “2030, 방역에 적극 동참해 달라”

방역당국과 서울 등 수도권 지자체들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20대와 30대 사이에서 감염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결국 거리두기 개편안 적용을 한 주 미루기로 했다.

전날 오후 중대본은 “서울시에서 자치구 회의 등을 통해 의견수렴을 한 결과, 상황이 엄중하다는 인식 하에 새로운 거리두기 체계 적용을 한 주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수도권은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유흥시설 집합금지, 노래연습장, 식당·카페 오후 10시 이후 운영 제한 등 현재 조치가 일주일 동안 유지된다.

이에 앞서 권덕철 중대본 제1차장 겸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대본 회의에서 “전체 신규 확진자의 83%가 수도권에서 발생했다. 특히 서울은 300명대 중반으로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연령별로는 젊은 층에서 확진자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하는 학원, 주점, 유흥시설 등에서 집단감염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와 함께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사례도 수도권에서 다수 보고되고 있어 방역에 경고등이 울리고 있다”며 “특히 20대와 30대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당부드린다. 오래된 거리두기로 인해 답답하시겠지만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만이 일상 회복을 앞당기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