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에서 이달 초 등산로를 오르던 박미향(50)씨는 숲속을 배회하던 1m 정도 크기의 들개 3마리를 보고 몸이 굳었다. 박씨는 “소리를 지르면 개들이 달려들까 봐 최대한 움직이지 않았다”면서 “등산로에서 개가 사람을 보고 빤히 쳐다보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다.

주인을 잃거나 개농장을 탈출한 개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시민들의 안전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다. 도시 외곽이나 농가, 공원 등에서 주인 없이 길을 떠도는 유기견이 야생화되면서 가축은 물론 사람까지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반려견을 기르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유기견의 수도 빠르게 늘고 있어 앞으로 ‘들개화(化)’ 된 개들의 위협이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인천대공원 관모산 일대에서 지난 2019년 5월 포획된 들개. /인천시
경기 남양주에서 50대 여성이 대형견에 물려 숨진 사고와 관련해 경찰이 23일 오전 개를 마취한 뒤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경기 남양주 진건읍 인근 야산에서 풍산개와 사모예드 잡종이 50대 여성의 팔과 목덜미 등을 물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피해 여성은 지인이 일하는 공장에 들렀다가 피해를 입었다. 119대원들은 50대 여성을 공격한 것으로 보이는 대형견을 인근에서 발견해 마취총을 쏴 포획했다. 무게가 약 30kg 정도인 이 개는 인근 개농장에서 탈출한 것으로 추정됐다.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인천대공원에서는 지난 2019년 갑자기 출몰한 들개에 시민이 다치기도 했다. 들개는 공원에서 산책 중인 한 반려견을 공격한 뒤 반려견과 함께 있던 시민에게 달려들었다. 시민은 놀라 넘어지면서 머리와 손 부위에 부상을 입었다. 공원에 출몰한 들개는 검은색 중형견으로 목줄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자체들은 애초 반려견이었던 들개들이 대부분 주인으로부터 버려진 뒤 시간이 흐르면서 야생화된 것으로 파악했다.

그래픽=김란희

주인을 잃거나 사육장에서 탈출한 개들이 늘면서 사람이 개에게 물리는 사고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특히 야외활동이 늘어나는 5~8월에 개물림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6∼2020년)간 개물림 사고로 1만1152건의 환자가 이송됐다. 하루 평균 6건이 넘는 크고 작은 개물림 사고가 일어나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모두 2114건의 개물림 사고가 발생했다. 월별로는 4월(145건)에서 5월(215건)로 넘어가면서 급격히 증가해 8월(252건)에 연중 최다를 기록했다. 개물림 사고로 진료비도 늘어나는 추세다. 보험개발원이 발표한 개물림 사고 진료비 통계를 보면, 개물림 사고 피해자 1인당 평균 진료비는 200만원에 달했다. 평균 진료금액은 지난 2014년 148만원에서 2018년 239만원으로 61.4% 상승했다.

유기견으로 인한 가축 등 재산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야생화된 유기견으로 인한 피해는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5월 경남 김해의 한 양계장에서는 들개의 공격으로 닭 1000여마리가 폐사됐다. 경남도의회 김호대(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경남지역 농가 129곳에서 2578두의 가축이 들개로 인해 피해를 봤다. 산에서나 주택가에 내려온 들개로 인한 인명피해도 5건에 달한다. 제주시에서는 지난해 들개로 인해 닭 120마리와 젖소 송아지 5마리, 한우 4마리, 망아지 1마리를 잃었다.

지난해 6월 인천시 서구 연희동에서 포획된 야생화된 유기견./ 인천시
31일 오전, 서울 관악구 관악산 등산로에 들개, 유기견, 야생동물 등을 포획하기 위한 틀이 놓여져 있다. /고운호 기자

반복되는 개물림 사고에 일부 지자체들은 들개를 포획하거나 불법 사육장을 단속하는 등의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남양주시는 지난달 말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역 인근에 있는 불법 개 사육장에 대한 현장 점검을 했다.

인천시는 2019년부터 들개를 포획한 민간업체에게 1마리당 대가를 주는 ‘야생화된 유기견 포획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는 성견 106마리 포획에 필요한 예산으로 5300만원을 책정했는데 실제로는 226마리가 포획됐다. 올해는 유기견을 포획하는 데 예산 6000만원을 책정했다. 들개 포획 시 업체에 지급하는 비용은 성견은 마리당 30만∼50만원, 강아지(어린 개)는 마리당 10만~15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들개 포획비 지원 방식은 근본적인 대책 없이 ‘발등에 불 끄기식’의 대응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사람들이 함부로 반려견을 버리거나,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하는 불법 사육장 운영자에 대한 엄벌 등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함형선 동물구조단체 위액트 대표는 “들개 포획에 예산을 늘리면 들개가 아니라 동네에서 주인을 잃은 개까지 무차별적으로 잡아가는 상황으로 변질될 것”이라며 “유기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이나 중성화 사업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별도의 대책 없이 포획 예산만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는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