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부터 안전모(헬멧)를 쓰지 않은 채 전동 킥보드를 타다 적발될 경우 2만원의 범칙금을 내야 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헬멧 착용 의무화로 킥보드 이용률이 감소하자, 대여업체들이 규제를 풀어달라며 호소하고 나섰다.

13일 서울 강남구의 한 지하철역 앞 차도에서 안전모를 쓴 시민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에 대한 안전모 착용 등 도로교통법 개정안의 계도기간이 종료되면서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고 전동 킥보드를 타면 범칙금 2만원이 부과된다. /연합뉴스

킥보드 대여업체 14곳으로 구성된 ‘퍼스널모빌리티 산업협의회’는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이후 국내 킥보드 업체들의 매출이 30~50% 줄었다고 14일 밝혔다. 한 킥보드 대여사 관계자는 “개정안 시행에 앞서 지난 한달에 걸친 계도기간 일일 이용률은 규제 이전의 반토막 수준에 불과했다”며 “본격적으로 규제가 시행돼 범칙금이 부과되면 이용자가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제2종 원동기 장치 자전거 면허’ 이상의 운전면허를 받은 사람만이 전동 킥보드를 운전할 수 있고 이를 어길 시 범칙금 10만원이 부과된다. 헬멧 등 보호 장구 없이 전동 킥보드를 타면 2만원, 승차정원을 초과한 두 명 이상이 같이 타면 4만원, 보도 주행 시 3만원, 야간에 전조등과 미등을 켜지 않았을 때는 1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킥보드는 사방으로 뚫려있어 사고가 날 경우 앞바퀴가 충격을 먼저 흡수하는 자전거보다 크게 다칠 우려가 있다”면서 “위험성을 안고 달리는 이동 장치여서 헬멧 착용 규제가 시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헬멧 착용 규제로 인해 매출이 급감했다며 규제 완화를 촉구했다. 공유 킥보드 서비스업체인 라임코리아·머케인메이트·스윙·윈드·하이킥 등 5개 기업은 지난 8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범칙금 부과를 통한 강압적인 방법으로는 올바른 헬멧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헬멧 착용이 의무화된 후 킥보드 이용을 꺼리는 이들이 늘어났다. 직장인 이수정(29)씨는 “킥보드는 급할 때 빠르게 이동하려고 타는 건데, 아침에 손질한 머리를 망가뜨리면서 헬멧을 써야 하면 이용할 이유가 없다”면서 “게다가 여름을 앞두고 땀에 젖은 머리에 헬멧을 쓸 생각을 하면 차라리 다른 수단을 이용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전동 킥보드 규정이 강화된 첫날인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나루역 인근에서 헬멧을 미착용한 시민들이 전동킥보드를 운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유 킥보드 업계는 공유 헬멧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지만, 실패한 전례가 있어 고심 중이다. 서울시는 지난 2018년 공공자전거 ‘따릉이’ 탑승자에게 헬멧을 무료로 대여하는 사업을 했었다. 여의도에 있는 따릉이 대여소 30곳에 한 달간 1500대를 배치했지만, 이용률은 3%, 분실률은 23.8%에 달했다. 착용률이 저조하고 헬멧이 도난되거나 분실되는 등의 문제로 약 3개월 만에 시범사업을 접었다.

일각에서는 이용자와 보행자의 안전을 고려해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기보다는 속도 제한을 낮추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주로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수단인 킥보드를 타기 위해 헬멧을 휴대하고 다니라고 강제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현재 도로교통법상 개인형 이동 장치의 운행속도를 시속 25km 이하 제한을 10km대로 낮추는 대신 헬멧 착용은 자율에 맡기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동 킥보드 등 새로운 이동수단을 기존 법안의 잣대로 끼워 맞출 경우 업계 자체가 사장될 수 있다”며 “시대 변화와 기술 진보에 맞는 ‘맞춤형 법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